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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언니 오빠는 내 코가 낮다고 놀렸다.

코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옆에서 보면 아예 안 보여! 잘 봐봐.

웃음.

엄마 코랑 똑같아!

돼지코.

웃음.

내가 울고 있으면 엄마가 와서 말했다. 너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수술해야 돼. 5살 때로 기억한다. 그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할 줄 알기도 전부터 코가 낮다는 놀림을 받아서 싫고 슬프고 언니 오빠가 밉고 무섭긴 했겠지만 특별한 어떤 일로 여길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래왔으니. 어린아이로서 기죽고 서러워하며 울거나 가끔 ‘하지 마!’라고 했을 것 같다. 언니 오빠는 하여튼 틈만 나면 앞에서 양옆에서 약간 뒤에서 내 코를 관찰하며 놀렸다. 내가 엄마한테 일러도 엄마는 수술해주겠다는 말이나 했겠고.

언니 오빠가 엄마에 대한 반감도 표현할 겸 겸사겸사 내 코를 즐겨 놀린 것 같다. 내 코는 엄마 코와 거의 똑같이 생겼고, 낮다. 낮았다. 엄마는 그 코, 자신과 똑같이 낮은 코를 이미 싫어하고 있었다. 본인도 코 성형을 받을까 고민고민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국 안 받았고, 수술받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낳았는데 자기 코랑 똑같이 생긴 걸 보고 ‘얘는 수술해줘야지’ 하고 결심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계모로서 위축되어서인지 나를 잔인하고도 집요하게 놀리는 언니 오빠를 말리지 않았다. 대신 내 코수술비를 모으기 시작했다. 어쩌면 언니 오빠가 내 코를 놀리기 전부터 엄마가 먼저 수술 얘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평강공주처럼 '고등학교 졸업하면 코 수술'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그런 줄만 알았다.

실제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수능이 끝난 후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압구정역 3번 출구로 나가 처음 들어간 성형외과에서 몇 분 상담을 받고 바로 수술대에 앉았다. 그렇게 코를 높이는 수술을 받게 된다.

엄마랑 나는 마치 미인이 되는 것은 감히 바라지도 않는다는 듯이, 제발 지금의 코로부터 벗어나기만 하게 해 달라는 듯이, 너무 지금처럼 낮지만 않게,라고 벌벌 떨며 의사에게 부탁했다. 18년 동안 생각은 하지만 처음 들어간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 이게 엄마와 내가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수술비 180만 원을 결제하려는 순간에는 약간 망설이기는 했는데, 무척 친절하게 굴던 병원 실장이 어머님 팔 검버섯 제거도 해드릴게요 하는 말에 그래 하자, 하고 수술비를 결제했다.

수술 방법은 이랬다. (수술을 받은 뒤 몇 년이 지나서야 자세히 알게 되었다.) 두 콧구멍 가운데의 살과 인중이 만나는 부분을 절개해서 코끝 안쪽의 무언가를 묶어 주고, 귀 연골을 이식하고 실리콘을 콧대에 넣었다고 했다. 국소 마취로 왼쪽 귀 뒤에서 연골을 떼는 수술을 먼저 했다. 당시에는 내 귀와 코에 뭘 하는 건지 자각도 못하고 있다가 몇 년 후에 그 병원에 재방문해서 알아낸 거다. 이 때문에 왼쪽 귀를 당기면 어색한 느낌이 10년 이상 갔다.

귀 수술은 누워서 하고 코 수술을 앉아서 했다. 간호사 한 명 의사 한 명. 나랑 상담한 의사가 와서 주사를 놓고 구멍 뚫린 초록색 천을 내 얼굴에 덮어 코만 드러나도록 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사람이 성형외과 전문의인지는 또 수년 뒤에 검색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수술을 받으며 기분이 어땠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별 생각도 느낌도 없이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어어... 이렇게 수술 받는 거구나. 여기 앉으라고? 음... 뭐 하는 거지? 잘 되려나? 진짜 하는 건가? 이렇게? 지금? 지금 하고 있는 거? 어떻게 되려는지, 뭘 하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른 채, 수술 방법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성형수술의 의미도 수술하는 이유도 무엇도 그냥 모른 채 거기 있었다.

수술대에 앉아 어느 정도 있으니 코에 바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 아... 아픈데요.

거의 다 끝났어요. (바느질)

어... 어 너무 아픈데요.

(한숨) 마취 한 번 더 할게요.

그렇게 코를 열고 콧대를 세우고 봉합하는 과정이 끝났다.

코 주위에 이런저런 살색 테이프를 붙이고 당분간 안경은 쓰지 말라는 설명을 듣고 미리 준비해 간 모자를 쓰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내가 피범벅도 아니고 말도 멀쩡히 하는 걸 확인하곤 긴장이 풀린 듯 '돈 받자마자 태도가 싹 변해가지고 팔은 대충 세 갠가 네 갠가 해주는 둥 마는 둥' 하며 불만을 토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안경을 썼다.

며칠 뒤 실밥을 풀러 간 병원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마주쳤다. 나중에 들으니 걔는 거기서 상담만 받고 수술은 다른 데서 받았다고 했다. 동창회 때 보니 걔는 코랑 눈이랑 여러 군데 한 것 같았다.

나는 코를 세웠다고 스스로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 참을 수 없이 말하고 싶었다. 곧 터지려고 하는 풍선처럼 말하고 싶은 압력이 너무 컸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내 코를 구경했다.

벌써 했어?

너 보고 싶었어 코 어떻게 됐나.

나는 코를 수술했다는 사실을 마구 떠들었는데 아마 너무 오랫동안 예정되어 있던 일이 드디어 일어나서 너무 시원했던 것 같다. 태어나서부터 예언되었던 일이 드디어 실현되고 지나가서 후련하고 부담을 떨친 기분, 아 맞는 예언이었구나,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만 너무나 신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떤 애들은 내가 수술한 걸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안도하고 아쉬워했다. 어쨌든 내 코는 수술 전에도 후에도 안경으로 어느 정도 가려져 있었던 것 같다.

성형수술을 받기는 했으되 나는 몇 년 동안이나 코 수술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코아 높아지기는 했으되 미인이 된 것은 아니라서 '나는 성형미인은 아니고 성형인만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자신이 원해서 수술한 게 아니라는 걸 몇 년이 지나 상담실에서 울면서 깨달은 뒤로 나는 상태가 안 좋아질 때마다 코가 아프다고 느꼈고 그때마다 압구정역에 내려 성형외과에 갔다. 내가 코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 전후 과정을 실제로 실제로 자각한 것은 그로부터도 3, 4년 뒤였다. 또 다른 상담실에서.

그럼 만약에 언니나 오빠가 놀리지 않고 어머님이 강요하지 않으셨으면 코 수술을 안 받으셨을까요? 원래 본인의 코를 좋아했나요?

... (씨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 게 더 화가 났다. 원래 내 코도 원래 좋아하지도 않았어. 근데 그게 언니 오빠가 놀리고 엄마도 수술해야 한다고 해서 그런 건지, '내가' 안 좋아한 건지도 모르겠었다. 지금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언니 오빠가 나를 얼마나 미워했는지를, 내가 얼마나 미움받는다고 느꼈는지를 깨달은 뒤로 코는 점점 더 신경 쓰이게 됐다. 수술을 받고 몇 년이나 지나서부터 (그 몇 년 동안 이리저리 상담실과 집에서 지하철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우는 시간들을 거쳐)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코를 세우기를 원한 적도 없이, 원할지 말지 알기도 전에, 내 코가 어떤지 스스로 보기도 전에 코를 세우는 것으로 마치 이미 일어난 일만큼이나 정해진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게 억울했다.

내 코를 만든 의사가 성형외과 전문의인지 검색해 본 것도 이 몇 년이 지나서였다. 그 의사는 전문의가 맞았다. 운이 좋게도. 그 병원은 내 코를 만든 후 8년 이상 압구정역 앞에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다)

하여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안 좋을 때마다 코가 아팠다. 분명히 아팠다. 아린 것 같고 멍든 것 같고 부은 것 같고 염증이 생긴 것 같고... 빨개진 것 같고... 걱정거리가 생기면 일단 코를 걱정하며 잠들고 잠에서 깼다.

코 코 코 코가...

낮았다가 수술한 코가...

가장 큰 성형수술 부작용 카페들에 가입하고 온갖 증상을 검색하며 가장 작고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느낌까지 찾아내 걱정했다. 내 코를 수술한 방식도 뒤늦게 자세히 알게 됐다. 그 병원에 몇 번이나 가서 물어봤다. 괜찮나요? 부작용은 없나요? 여기가 좀.. 의사도 간호사도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법한데 나 정도 병자는 익숙하다는 듯이 활기차고 반갑게 다뤄 금세 집으로 돌려보냈다. 매번 최대한 친절히 빠르고 경쾌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잘 됐다고 했다.

괜찮은데요?

잘 됐어요.

눈은 생각 없어요? 요즘 겨울 방학 할인하잖아.

내 코를 만지는 의사의 손에서 담배냄새가 진동했다. 이러이러한 코여도 냄새는 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두운 얼굴과 후줄근한 행색으로 걱정하는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몇 번이나 확인받고도 안심하지 못했다. 문제가 지금 생겼을 수도 있잖아. 몇 번째인가 갔을 때는 의사가 '이렇게 수술했을 때는 문제가 적었는데, 요즘은, 하!' 하고 한탄했다.

하지만 관심은 코에만 한정된 것이었는지 외모 전반은 거의 방치하고 다니는 것이 특이사항이었다. (열등감이 꼭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어쩌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성형 이야기가 나오면, '여기 지금 성형한 사람 아무도 없지' 하는 확신 하에 성형에 대해 비웃거나 까는 얘기가 나올 때가 많았다.

걔는 코 또 수술했다며?

어 아직 새파랄 때 봤잖아 코.

겨울에 완전 빨개지던데 다양하네.

실리콘을 넣었다 뺐다. 조립식이야? (웃음)

그게 그거던데 (웃음)

자기만 아는 거지 뭐 (웃음 웃음 웃음...)

이럴 때는 성형인이라고 비난받기 무섭거나 그를 반박하기 두려워서가 아니라 까는 사람이 민망해지게 하기 싫어서 말은 안 했지만 가끔은 짐짓 태연한 척 '저 코 세웠는데요?'하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니?

너가?

여자는 정말 믿을 수가 없네!

내가 코를 세웠는데 왜 여자를 믿을 수가 없는지 잘 생각해 봤다. 가장 성형 안 할 것 같은 여자로 뽑혔던 것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물론 거의 매일 코를 가지고 걱정했다. 취미생활이나 특기 란에 적을 수준이었다. 물론 한 병원만 믿고 있기 힘들었으므로 다른 병원들도 찾아다녔다. 학교 끝나면, 수업 없는 날에, 주말에.

'코 재수술 전문!'

'코수술 세 번은 해야 예쁘다?'

'코 재수술의 핵심,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결과로 이어져야'

'성형 후 쪼그라든 코, 재수술 원한다면?'

'비개방 코성형 고난도 코 재수술'

막상 내 얼굴을 검토한 의사들은 말했다.

지금 코가 문제가 아닌데?

안경 벗고 화장을 좀 해요 옷도 밝게 입고.

여기랑 여기 턱끝이랑 필러 좀 넣고, 턱은... 수술이 너무 크고?

이게 정신과적 문제일 수가 있어서.

살을 빼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눈은 생각 없어요? 확 달라질 텐데?

이마와 눈밑과 턱끝에 지방을 넣으라거나 팔자주름을 어떻게 하라거나 슈링크나 쌍꺼풀을 권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나는 또 다른 병원을 물론 찾아갈 수 있었다.

부작용은 없나요? 실리콘 그냥 빼버릴까 봐요. 걱정하기도 지쳐서.

뺄 게 아니야. 빼면 지금까지 걔가 본인 얼굴에서 해온 역할을 실감하게 돼요. 지금 뺄 때가 아니에요.

그래... 원래 코가 너무 오똑하고 너무 예뻐서 조금만 못생겨지게 하려고 수술을 한 건 아니니...

때로 아주 오래, 오래 집중해서 생각해야만 깨닫곤 했다. (깨닫고 또 걱정에 빠져 결론을 잊고 한참 후에 돌고 돌아 다시 깨닫곤 했다) 내가 원하는 건 코를 수술 전으로 돌이키는 것이었다. 수술 전으로 돌아가서 내 코를 스스로 다시 보고, 그래도 내가 봐도 못생겼는지, 아니면 마음에 드는지 보고, 내가 수술을 하든 그냥 살든 정하고 싶었다. 왠지 결국 내가 결정해도 수술을 하기로 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서 자존심이 상했으나 그게 내가 원한 건지 못생겼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자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는 억울함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코를 어떻게 해도 이미 한 수술을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또 원래 내 타고난 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어찌 됐든 그냥 성형 수술을 여러 번 받고, 그러고도 여전히 미인도 아닌 (코만 세운다고 예뻐지는 건 아니었다) 성형인이 되는 수밖에는 없다는 걸 깨닫고서야 성형외과에 가길 그만두었다. 이미 이렇게 된 일이구나... 압구정역 강남역에 다니길 몇 년이나 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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