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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Jun 17. 2024

2 자수(2) - 서울

자수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 가리개 병풍에 수를 놓아서 일하던 집 여자에게 부탁해 팔아달라고 했다. 물론 여기서도 그 여자는 돈을 남겨 먹겠다고 했지만 나는 팔 길을 모르니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오는 차비를 마련한 거다. 추석이 되어서 서울 오는 당숙모를 따라 서울역에 도착하니 첫눈에 자가용이 많은 게 보였다. 고가도로도 보이고 친척 고모가 수놓은 일을 하고 있어 그나마 그 끈으로 서울로 오게 된 게 그때는 다행이었다. 

어느 빌딩 5층에서 고모와 같이 수놓는 일을 하게 되었다. 숙질간이란 걸 알리기 싫어 성을 다르게 부르기로 약속을 하고 그냥 그날부터 수놓는 걸 배우며 일을 하게 되었다. 고모는 저녁 때면 퇴근하고 나는 그곳에서 먹고 자기로 되어 있는데 일단 이불이 없으니 어떻게 잤는지 며칠 뒤에 집에서 이불을 소포로 보냈다. 서울이라는 곳에 적응하느라 길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았는지 서울역 옆에 우체국에 가서 이불을 찾아가지고 왔다. 죽을 수는 없었는지 죽기가 싫었는지 내가 서울 와서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다니다니 꿈만 같았다. 빌딩 전체 두 층을 쓰면서 일본 사람들의 옷에다 수놓는 일이 칠십 년도 팔십 년도에 크게 성했던 것 같다. 많은 시골이나 도시 처녀들이 이 일을 했었다. 잠자리 주고 먹여 주니 그때는 그랬었다.


여기서도 나이가 많은 나였다. 밤에 자고 나면 빌딩 문이 한 겹인데다 낡아서 겨울에는 눈이 이불 위에 쌓여 있기도 하고 먼저 온 사람이 난로 옆을 차지하니 늦게 온 사람은 남는 곳에서 자야만 했다. 그나마 이불도 없어서 남의 옆에 붙여 자는 애들도 가끔 있었는데 자다 보면 이불 주인이 그냥 맨몸으로 자고 있기도 했다. 이불도 못 덮고 웅크리고 자다 보면 온몸이 아파서 울상이 되었다. 월급을 얼마나 받았을까. 생각도 안 난다. 

사람은 많고 말도 많고 견뎌내기가 힘들었지만 갈 곳이 없으니 어쩌지도 못하고 있을 때 때마침 동갑내기 친구가 한 명이 왔다. 살필 새도 없이 그냥 친구가 되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였다. 일 끝나면 그 친구와 시장 구경도 하고 서로 어려운 사정 얘기도 하고 지내기 처음에는 좀 위안이 되었는데 그 친구는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늘 울었다. 여기서 있는 것보다 가내 공업으로 몇몇이 있는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 집 사장 여자는 본인도 수를 할 줄 아는 여자였다. 당번을 정해서 밥을 해 먹고 대신에 월급을 조금 더 받는 걸로 서로 말이 많았다. 누구는 더 하고 누구는 덜 하고 더럽다는 둥 말들이 많아 조용하지를 못했다. 꼴을 못 보는 사람이 일을 더 할 수밖에 없었다. 밥을 해주는 곳을 찾아 다시 옮겼다. 어디 가나 사람 사는 곳은 탈도 많고 말도 많았다. 나이가 많다는 것도 기가 죽는 일이었다. 어린애들의 눈치를 살피게 됐다.

그러던 중에 책임자라는 자리를 맡게 되었다. 조금 그래도 내가 할 말이 있으니 있기가 나아졌다. 물론 주인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이 의무가 되기는 했지만 다른 아가씨들보다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올라온 대접을 해주었다. 한 곳의 살림을 맡은 셈으로 마음이 무겁기는 했지만 내가 맡았으니 맡겨줬으니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다. 여기는 가내 공업이라기보다는 크게 일본 사람이 사장이고 여기 사장은 한국 사장인 작은 회사였다. 지방에도 일하는 곳이 있어 매주 일감을 고속버스로 보내고 받아오고 했다. 사장은 잘 사는 부모에 잘하는 남편에 자기도 벌고 어려움을 모르는 여자였다. 사장의 조카며느리가 경리였는데 사장이 나한테만은 잘해준다고 무슨 비결이 있느냐고 했다. 비결이야 일 부지런히 하는 것밖에 없다.


그때 여자 처녀애들만 한 사십 명이 전부 머리 고개를 숙이고 귀에 레시바를 꽂고 수를 놓는 풍경은 깨끗하고 정숙해 보였다. 사무실은 다른 곳에 있어 모두 여자 젊은 처녀들만 있으니 남자들이 대문 앞에서 서성이기도 하고 때로는 바바리맨을 봤다고 소시지 같다고 벌벌 떠는 애도 있고 연애하는 애들은 무서워하기도 했다. 세탁기 하나 없이 겨울에 빨래를 말리기가 어려워 밤이면 방안에다 빨랫줄을 치고 말려 입었다. 처녀들이 밥은 할 줄 몰라도 빨래는 잘했다. 밤이면 부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니까 주전자에다 몰래 라면을 끓여 먹고. 아침에 아주머니 목소리가 거칠게 야단을 친다. 아무리 말려도 다 지킬 수가 없었다. 

그 집은 등나무가 큰 게 한 그루가 있어서 등나무 꽃이 보라색으로 아래로 늘어져 피면 그늘도 지고 향도 나도 참 아름다웠다. 꽃이 지고 나면 울타리콩 모양의 열매가 맺어 있어 넉넉함도 주었다. 그 등꽃 아래다 연탄난로를 피워 놓고 밀가루 풀을 조금씩 끓여서 수놓은 뒷면에 풀칠을 해주는데 풀을 끓일 때면 연탄 냄새가 나서 등꽃에게 미안했다. 일본에서 원단을 가져와 여기서 수를 놓아서 다시 가져가는 일인데 주로 일본 상류층 여자들의 옷이라고 했다. 일본의 한복이나 마찬가지인 기모노, 하오리, 오비 뭐 이런 것들에 손으로 수를 놓은 옷이니 무척 비싼 옷감이라고 했다.


방을 얻어서 출퇴근을 하는데 주인집과 마루를 같이 쓰는 건넛방이었다. 직장과 가까운 데여서 밥은 안 해 먹기로 하고 구한 방이었다. 그 집에는 쌍둥이 딸이 있었는데 한 애는 결혼을 하고 한 애는 결혼을 안 했다. 결혼 안 한 애는 다리를 저는 처녀였다. 둘 중에 남은 애가 언니라고 했다. 누가 누구를 불쌍히 여기는지. 기가 많이 죽어 보이는 게 정말 불쌍했다. 결혼한 애가 친정에 오면 집안이 시끌벅적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시집 안 간 애는 내 보기에 그런지 더욱 기죽어 보였다. 부모도 잘 사는 자식이 편하고 좋은 게 당연한 거다. 그런 날이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괴롭고 심란했다. 될 수 있으면 마루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나오고 들어가고 했다. 

일하는 곳도 가까우니 출근을 하면 아침을 먹고 일을 시작하는데 아침이면 아주머니가 불평을 한다. 어젯밤에도 부엌을 엉망으로 해놓았다는 거다.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거의 그대로 상이 널브러져 있길래 나도 화를 못 참고 큰 소리로 욕을 했더니 어떤 애는 벌벌 떨었다. 어떻게 그런 욕을 하느냐고. 어떤 애들은 지금 치우면 되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식으로 떨떠름해하기도 한다. 과한 화를 내고 나면 제 풀에 죽기도 그래서 몇 번 더 소리를 지르고 참는다. 주인아줌마 들으라고 더 소리를 지르기도 해야 한다.


일이 적었는데 줄어들고 보니 많은 일이 나에게 주어졌다. 전기 수도세 내는 일도 해야 하고 전기 수도 아끼는 잔소리까지 해야 했다. 아줌마가 아침이면 설거지거리를 만들어 놓는다고 냄비를 다 감추고 열쇠를 채워 놓으니 주전자에다 라면을 끓여 먹는다고 보다가 처음 본다면서 열을 내고 잔소리 잔소리를 한다. 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조용할 리 없지 않은가. 빨랫줄에는 항상 빨래가 널어져 있다. 밤에는 걷어 들이라고 해도 말 안 듣고 아침에 빨래 줄에서 없어졌다고 야단이 난다. 마당이 좁은 편이고 담이 낮아서 갈고리를 만들어 밖에서 빨래를 걷어가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처녀들이 많으니 총각들이 기웃거리기도 하고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애들도 있고 며칠 일하다 가는 애들도 있고 날마다 조용할 날이 없다. 

열이면 열 가지 성격이요 사십 명이면 사십 가지 성격이라 어떤 처녀애는 이 사람하고 결혼 약속을 해놓고 다른 사람과 결혼 날짜를 정했다고 먼저 결혼하려고 한 쪽에서 그 부모와 총각이 여기 일하는 곳까지 찾아오기도 했는데 창피했는지 빨리 데리고 나가서 일을 정리했다며 밤늦게 들어오기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뒤에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고 했다. 나로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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