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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Jun 17. 2024

2 자수(1)

진작에 혼자 나와서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길이 전혀 안 보이더니 이렇게 큰일이 있고 보니 이제는 나 혼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엄마집에 와 있으니 새로 눈치가 보였다. 전에는 큰집에 사느라 눈치 보고 살았는데 이제야 내 엄마 집에 살게 되니 더 눈치가 보였다. 이혼 절차가 끝나고 동양자수를 배웠다. 본래 할 수는 있는 일이어서 크게 어렵지 않게 할 수는 있었지만 돈을 많이 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평소에 바느질이나 수놓는 데 소질이 있어서 큰엄마네 친정조카며느리가 동양 자수를 사람을 데리고 한다고 해서 거기 가서 일을 했다. 아예 집을 나가서 그곳에서 살아 보기로 맘을 먹고 갔다. 스물네다섯 때의 일이다. 먹고 자고 할 수 있으니 쉽게 집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해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이불과 요를 싸서 머리에 이고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직장. 남의 집에 살게 된 거다. 하기야 자랄 때도 엄마 아버지랑 같이 살지 못했지만.


예닐곱명의 처녀들이 모여서 병풍에 수를 놓는 일을 했다. 내가 나이가 늦어 그중에 제일 언니였다. 주인 여자가 따지자면 외사촌 올케가 된 셈이다. 남편을 일찍 보내고 남매를 키우는 여자인데 한글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똑똑해 보였다. 내 나이에 이런 생활하는 사람도 없고 아주 먼 친척도 되고 하니 그 여자는 나에게 책임을 주었다. 살림을 맡기고 외부일도 보고 서울에 물건을 가지고 가기도 했다. 일하는 거나 살림살이도 신경을 쓰고 이 집 아들애가 좀 상태가 안 좋은데 그 애의 비위도 맞춰야 했다. 처녀들이 있는 집이라 당연히 연애하는 사람도 있고 옆집 총각을 혼자 좋아하는 애도 있었다. 그 애는 택시 운전하는 총각을 알아서 택시 타고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쉬는 날에는 멀리 구경가기도 했다. 나로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거다. 이런 세상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명절 때도 집에 가는 게 여기 있기보다 싫어서 내가 밥을 해주고 나도 먹고 했다. 일하는 집에 있어도 집에서는 오라는 기별도 없었다. 낳은 부모라고 다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때는 내가 가지 않았으니 하고 별로 섭섭하지 않았는데 지나고 보니 걸어서 올 거리인데 동생들을 보낼 수도 있으련만 무정한 엄마였다. 그러기에 나를 큰집에 두고 이사를 했겠지. 어떤 한 편으로는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그랬을까도 싶다.

집이 가까이 있어도 정도 못 붙이고 명절이 되어도 집에도 가지 않고 여기도 불편하지만 일하는 집에서 있어도 내 엄마는 나를 데리러 보내지도 않았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무심해서 나도 나도 모르게 무심하기 짝이 없나보다. 서럽고 울적해서 견딜 수가 없어 죽고 싶어도 그렇게도 못하고 기찻길을 걸어가며 기차가 갑자기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해봤다. 



엄마는 왜 엄마만, 외할머니만 탓하지? 외할아버지는?


그 집도 남매를 데리고 여자 혼자 사는 집이어서 사는 게 어려웠다. 딸도 반항적이고 학교도 잘 가지 않고 아들은 중학생이었다. 얼마나 못되게 구는지 엄마한테 함부로 하고 대들고.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늘 먹을 거 타박하고 같이 먹자고 계란을 사다 놓으면 한 번데 다 삶아서 다 먹어치울 정도였다. 계란을 한 판을 먹는 사람은 여기 아들애를 처음 보았다. 

세 들어서 겨우 아가씨들 붙잡고 일하고 수놓아 서울 가서 팔아다 먹고살아야 하는데 자식들이 이렇게 하니 살림이 제대로 될 수가 없었다. 일 년도 못 있는 동안에 월급이라고 제대로 줄 때가 드물었다. 이 주인 사장도 점점 형편이 어려워졌다. 겨우겨우 살아가는데 아들애가 자꾸 돈을 쓰고 좋지 않은 행동을 해서 경찰서도 가고 편할 날이 드물었다. 곧 이 집에서의 일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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