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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Jun 17. 2024

2 자수(3) - 사장

구석에 서서 실타래를 풀어주고 있는데 누가 라디오를 그냥 틀어 놓았는지 갑자기 뉴스를 하겠다고 했던 것 같다. 광주에서 큰 사건이 생겼다고 했다. 바로 5.18이 일어난 거였다. 들고 있던 실타래를 떨어뜨리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집에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그 후로 자세한 연락도 못하고 가슴 졸이면서 지냈던 일이 생각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크게 사람 다치지는 않고 문방구하던 곳이 망하고 엄마 말씀이 인공 때보다 더 무서웠다고 했다. 벌건 불덩어리가 막 날아다니는데 아들과 사위는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해도 밖으로 나가서 큰 걱정을 했다고 하셨다. 조카가 집에 있었는데 걸어서 시골 자기 집으로 보내는데 반쯤 걸어서 보내주고 오기도 했다고 했다. 비굴하다고 할지 몰라도 앞에 나서지 않았으니 더 큰 피해는 면했다고 했다. 나야 잘 모르지만.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광주에 빨갱이들을 풀어 넣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입을 비틀어가며 욕을 한 사람도 있다. 김대중이가 어쩌고 하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정치하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니.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날 광화문에를 갔다가 못 빠져나오고 죽을뻔했던 일도 생각이 난다. 사람 많은 곳을 잘 가지 않는데 그날 왜 혼자서 거기를 갔었는지 나중에 들으니 신발이 몇 자루가 나왔다고 했다. 광화문 4거리를 사람들이 꽉 메웠던 생각이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운구차는 보지도 못하고 사람이 많았던 생각만 난다. 내가 그곳까지 갔으니 많은 사람들이 왔겠지. 지금도 광화문 생각하면 그때가 떠오른다.  


세상은 시끄럽지만 자기 할 일은 해야 살아가지. 일할 사람이 없으니 자연히 수입이 적어지고 결국에는 회사를 접기로 하고 나에게 모든 집기나 남은 일할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맡으라고 했다. 기술자들은 수를 놓을 수 있는 사람까지 맡아서 일할 기회가 나에게 온 거다. 열심히 일을 해준 대가일까 그 사장한테는 일을 그만두면 별 볼 일 없는 물건들이지만 나에게는 이 정도 마련할 능력이 없었다. 고민 끝에 동생한테 부족한 돈을 빌려서 높은 곳 꼭대기에 큰 방을 구해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보내고 나와 같이 하겠다는 애들만 12명인가를 데리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님한테는 감사하다고 첫 번 달에 인사를 하러 갔다. 사람이 마음에 있다고 다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차차 멀어지고 지금도 살아 계신지 가끔 생각을 하지만 찾아가지는 않는다. 본래 부자로 자라서 부자로  살아서 그런지 만나면 지금도 자기가 부리던 사람 취급을 하는 느낌이 싫기도 해서 그만 보기로 마음먹은 건 딸애 결혼하고서다. 결혼하기 전에 찾아가서 날짜도 말했는데 오지를 않았다. 딸이라도 한 사람 보내든지 전화라도 있었으면 마음이 맺히진 않았을텐데 그때 알았던 분들이 연세가 많지만 세 분은 찾아와 주셨다. 

나도 일을 하고 밥도 내가 하고 부지런히 했더니 월급보다는 많은 이익이 났다. 사무실에서 하청을 받으니 단계가 한 번 줄고 나 혼자만 있으니 세금이 많이 나왔다. 사업자 등록을 했다. 백합자수였다. 백합이 희고 깨끗해 좋아 보였다. 세무서에서 나왔다고 남자가 와서 방을 들여다보더니 좀 놀라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현장을 보니 정말 시원찮은가보다. 나 혼자서 먹고 사니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그래서 동생 앞으로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일 년마다 방을 옮겨야 했는데 높은 곳에 있기는 했지만 방이 넓어서 재계약을 할까 했는데 그 집에 딸이 내가 없으면 우리 아가씨들한테 와서 자꾸 시비를 걸고 잔소리를 한다고 했다. 그날도 회사 사무실에 가서 일거리를 들고 힘들게 고개를 넘어왔는데 물을 많이 쓴다고 잔소리를 했다고 애들이 투덜댔다. 며칠 뒤 마음먹고 동생을 불러서 그 딸하고 싸움이 벌어졌다. 잡았으면 경찰서 갈 셈 잡고 두들겨 패 줄 심산이었는데 한참을 싸우다 그 부모들도 말리고 이 여자도 어디로 숨어버려서 싸움은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하고 나니 그 뒤로는 전혀 괴롭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 여자도 이혼하고 친정에 와 있으니 화풀이를 하는 거고 나도 혼자 산다고 만만히 보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해서 더 악을 쓰고 했던 거다. 여기도 서울이라고 사느냐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는 집이었다. 

일 년을 살고 조금 모은 돈을 합쳐서 아래 동네 다시 응암동으로 이사를 했다. 방 두 개에 화장실이 따로 있는데 마루를 같이 쓰는 옆방이 있었다. 그쪽 방이 두 개였다. 시누이를 같이 데리고 사는 빵집을 하는 집이었다. 한 마루를 쓴다지만 늘 나가서 일하느라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는 여자였다. 우리는 항상 집에서 일하는 처녀들이 있는 집이고. 새로 가르칠만한 사람이 없어 한두 명 줄어든 우리 식구였다. 큰 방에는 아가씨들이 수놓느라 조용하고 내가 없을 때 의지하는 애 하고 작은 방에서 일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잇는데 부엌 쪽에서 약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부엌으로 나가는 문이 열렸다. 놀라서 쳐다보니 머리를 박박 밀어 깎은 청년이 서 있었다. 누구냐 뭐냐 이게 소리를 지르니까 이제는 부엌문을 열고 도망을 가는 거야. 얼떨결에 양말을 신은 채로 쫓아가니까 건널목을 건너서 돌아보고 나를 쳐다보고 서 있었다. 빨간불이 켜져서 못 건너기를 잘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양말만 신고 있었다. 그 남자애는 그냥 유유히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은평 세무서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에 시골서 살던대로 문단속을 잘 않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문단속을 철저히 했다. 행여나 우리 아가씨들이 피해를 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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