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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한결 Jan 05. 2021

태어나는 순간부터 빚쟁이였다

“꼭 너 같은 자식 낳아 봐, 어디~~~”


엄마한테 정말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던 말인 듯싶다. 엄청나게 모나고 별나지는 않았었다고 하지만, 자주 아프고 다치고 잔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나였다고 한다. 그냥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니 모든 것은 나를 낳은 부모님이 당연하게 지어야 하는 책임이라고 생각했었다.


‘결혼은 해야겠는데, 결혼할 돈이 없네?’


소소하게 나 혼자 벌어서 놀기도 하고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연애도 하고… 그냥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무슨 배짱이고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초콜릿을 만나고 결혼 이야기가 나올 무렵, 부모님께서도 당신의 큰딸이 그동안 모은 돈이 없을 거라는 것은 아셨기에 결혼 자금을 안 해 주실 생각은 아니셨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께서 막 엄청나게 돈이 있으셔서 해 주셨던 것은 결코 아니다. 어느 정도는 대출도 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죄송한 마음도 물론 있었다. 당연히 감사하고 너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필요하지는 않지만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은 최대한 안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혼 준비라는 것이 꼭 내 맘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막상 준비에 들어가고 나니 리얼하게 알게 되었다. 가구를 보러 갈 때에도 처음엔 그냥 최대한 저렴하게 할 생각으로 갔으나, 막상 가서 보게 되면 더 이쁘고 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눈에 보이게 되었다. 그런 것이 눈에 보이고 나면 다른 더 저렴한 것들은 마음에 차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선택, 역시 돈보다는 마음에 드는 것들로 하게 되었다.

“한 번 사면 10년 이상 오래 써야 하는 것들이니까!”

이렇게 약간의 불편한 마음까지도 스스로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직 일을 다시 시작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초콜릿이 버는 것으로 생활을 해야 했다. 모든 먹는 것, 교통비, 통신비, 보험, 공과금, 관리비 등등 이 모든 것을 초콜릿이 버는 것으로 다 해결을 해야 했다. 분명 월급에서 생활비를 주는데, 이상하게 통장에는 남는 돈이 없었다. 초콜릿에게 받은 생활비는 그냥 통장에 입금되는 즉시 여기저기 빠져나가기 바빴다. 그때, 직장인 친구들이 하던 ‘월급은 사이버머니’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재래시장이 이런 데구나!?”


초콜릿과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마련한 동네에 재래시장이 있었다. 처음 갔을 때는 정말 너무도 신세계였다. 그리고 그렇게 신기해하는 나를 보는 초콜릿의 눈빛 역시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둘 다 마치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하는 눈빛이었을 것이다. 모든 장은 마트에서 보는 건 줄 알고 성장한 나에겐 재래시장이라는 존재 자체가 신기함이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재래시장이 너무도 당연한 곳에서 성장한 초콜릿에게는 30년 넘게 재래시장이라는 것을 모르고 큰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 아마 매우 어이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마트와는 말도 안 되게 저렴한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이 좋았고, 재미있었다. 매일 이런 반찬, 저런 반찬… 만들어 보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둘이서 먹는 양이야 엄청난 대식가가 아니고서는 뻔했고, 재료를 사면 먹는 것보다 못 먹고 버려지게 되는 것이 더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녁 반찬을 하려고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면 뭐든 큰 묶음으로 파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분명히 우리 둘이 먹어서는 금방 다 못 먹을 텐데… 그럼 또 썩어서 버릴 텐데….’

물론, 마트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이유로 재래시장을 주로 이용하면서도 ‘더 작은 묶음으로 더 저렴하게는 안 되나?’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 덜 싱싱해 보이더라도 그냥 그렇게 1개씩 낱개로 파는 것들이 있으면 그런 것들로 사 와서 하루치만 만들어 먹고 끝내곤 했다. 그래야 그나마 사이버머니로 스쳐 가는 생활비 중에 또 다른 것들을 할 수 있는 돈이 남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정말 초콜릿이 버는 것만으로 해결해야 하는 생활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어렴풋이 알게 되기 시작했다.

‘저녁 반찬 때문에 장 보는 데 드는 별로 크지 않은 돈도 어떻게든 나눠서 다른 것도 살 수 있는 돈을 남기려고 하고 있는데, 엄마 아빠는 그 큰돈을 아무리 자식이어도 어떻게 그렇게 아끼지 않고 쓰실 수 있으셨을까? 그걸 나한테 안 썼다면 유럽 여행을 가셨어도 몇 번은 가셨을 텐데….’


“아무리 우리 부모님 세대였다고는 하지만, 서울에서 자식 둘을 정말 큰 위기 없이 키우시고 대학까지 다 보낸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일을 하신 건지 이제야 알 것 같아.”언젠가 초콜릿에게 내가 한 말이다. 30대 초중반에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고 쉽지 않은 병원 육아를 겪어 낸 지금, 38살이 되어서야 진심으로 알게 된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은 부모가 선택한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결코 내가 그 어떤 빚도 지지 않고 지금까지 커 온 것은 결단코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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