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한해숙
봉숭아 물들이기
매년 엄마는 봉숭아 물을 딸 넷의 작은 손톱에 물들여주곤 했다.
개구리 발처럼 열 손가락 끝이 동그랗게 꽁꽁 싸매진 손으로 장난도 치고 한참을 놀다 풀면 손톱 주변 살이 쪼글쪼글해져 할머니 손이 되었다고 까르르 웃곤 했던 기억이 난다.
첫눈이 오기 전까지 봉숭아 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말에 첫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꼬맹이들이 첫눈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며 손톱이 자라 봉숭아 물이 사라지는 걸 아까워했었다. 그러다 첫눈이 올 때면 가느다란 초승달처럼 남은 봉숭아 물에 좋아했었다. 언제부턴가 더는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지 않지만, 지나가다 봉숭아꽃을 보게 되면 옛날 기억이 떠올라 꽃을 보며 빙그레 웃게 된다.
[단상 고양이_ 봉숭아 물들이기]
200 x 200mm
이합장지에 채색
2021
copyright2021 by Han Hae-suk.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