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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Sep 28. 2015

청춘이라는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 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 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 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심보선_청춘     




대한민국

10년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20대 사망원인 1위, 자살     


살고 싶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두려웠다. 어쩌면 저 시처럼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괴로운 시절이었다.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시기가 오면서 생각했다. 지금 이 시기를 훗날 전화위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이 시기가 있어서 더 단단해질 수 있겠지, 그때가 되면 꼭 나처럼 힘든 누군가의 곁을 지켜줘야지.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아졌다. 가끔 사는 게 힘들긴 해도 이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살만하니까 잊어버렸다. 자살문제도, 마포대교도, 생명의 전화도. 2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것도, 10년 넘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것도 그저 읽고 넘기는 기사 텍스트가 되어 버렸다.     


왜 인간은 꼭 직접 겪어야만 깨닫게 되는 존재일까. 남의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똑같이 느낄 수 없는 존재일까. 도저히 역지사지가 불가능한 존재일까. 겪었어도 왜 다시 망각하는 걸까. 지난날을 살만 하면 잊어버리는 걸까, 왜. 또다시 고통의 시간이 와야만 그제야 뒤를 돌아보는 걸까. 도대체 왜 이렇게 지독한 존재인 걸까.     


사람이 무섭다고, 사람의 마음은 무섭다고 하는데, 나도 사람인 것을 잊고 있었다.      



사실 살고 싶은 건데, 너무너무     


꼭 한때 내 모습 같아서 자꾸 그 구절을 곱씹었다.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때때로 사람은 격한 긍정을 완전한 부정으로 표현할 때가 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그게 점점 불가능해진다. 그냥 속 시원히 가슴에 있는 말을 그대로 꺼내어 토시 하나 빼놓지 말고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모든 인간이 돌려 말하기, 선의의 거짓말, 빈 말, 마음에도 없는 소리, 이런 게 불가능했다면 훨씬 편했을 텐데. 왜 이렇게 비겁할까? 오늘의 내가 정말 싫었다.     


나도, 타인도, 모두가  가슴속에 있는 말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입 밖으로 꺼낸다고 생각해봤다. 직언직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그게 더 끔찍하다. 그래서 신이 인간을 부족하게 만드셨나 보다. 지독하긴 해도 어쩔 수 없는 게 인간인가 보다. 모든 인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타인도, 모두가. 행복은 행운이랑은 다른 거니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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