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호기심, 길

무한히 뻗은 길, 내가 가는 이 길은...

갓 2살 된 동생을 포대기로 싸서 업은 채 10살인 내 몸은 온통 땀투성이었다. 벌써 몇 시간 동안 길에 홀린 듯 같은 곳을 헤매고 있었다.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칭얼대는 동생을 업은 채, 재울 요량으로 동네 골목을 돌고는 했었는데, 가끔은 그랬듯이 골목을 벗어나 집 근처 도로로 나섰다.

사람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저 길을 쭉 가다 보면 어떤 곳이 나올까 궁금했다. 저 길 저쪽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일단은 쭈욱 가보고 적당한 지점에서 되돌아오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작정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날이 어스름해지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나서, 이제는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돌아섰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걷다가 지쳐 탈진했지만, 긴장과 공포감이 더 커서 힘든 것도 몰랐다. 어둠이 짙게 깔릴 무렵,

익숙한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안도감과 함께 눈물이 났다.

집에 도착하자 우리 둘을 찾기 위해, 집에서는 이미 한바탕의 난리가 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버스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유심히 바라다보고 있았다.

같은 번호의 버스가 양쪽 차선으로 오가고 있다. 한쪽 길에서 출발한 버스는 결국 반대쪽 길이긴 하지만 같은 장소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저 버스는 어디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오는 걸까.

며칠에 걸쳐 눈여겨본다. 그러다가 바로 밑에 동생을 데리고 무작정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는 계속 앞으로 달리기만 할 뿐 되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모르는 길이라 더욱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은 불안감에 일단은 버스에서 내렸다.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전혀 몰랐다.


할 수 없이 문 열려있는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버스가 다시 되돌아가는 줄 알았기에 집에 돌아갈 차비조차 없었다.

그 가겟집 아줌마, 아저씨는 겁에 질려 초췌한 우리에게 빵과 우유, 차비와 전화번호를 쥐어주었다. 도착하면, 궁금하니까 꼭 전화하라고 당부하면서.


다음 해 명절에 고마움의 표시로 언니와 함께 부모님이 싸준 선물을 들고 그 가게를 찾아갔다. 아줌마, 아저씨가 무척 반가워하며 음식을 내주었고, 화기애애했다. 돌아가려는 말미에 앞으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가게가 너무 안 돼서 다음 달에 문을 닫기로 했다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그토록 착한 아줌마, 아저씨가 왜 그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어린 나이에도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길은 나에게 호기심 이상이었다. 길게 뻗은 길, 그 길 끝에는 뭐가 있을까. 결국 끝나면 회전하듯 돌아서서 되돌아오는 걸까, 아니면 길은 무한히 펼쳐지는 걸까. 무한(無限).

길에 대한 무한의 개념은 우주에 대한 무한의 개념으로 연결되었다.


4학년 때였던가, 학교에서 우주에 대해 배울 때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우주는 끝이 없다는 말에.

무한의 개념은 어린 나에게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우주가 한없이 넓게 펼쳐졌고, 태양계를 벗어나면 또 다른 외계행성계가 있고, 그런 행성계가 아무리 무한히 있더라도, 그 끝은? 결국 끝이 없이 무한하다는 것인데, 요컨대 무한이라는 개념이 이해가 안 되었다.

손을 들고 선생님에게 질문하려다 말았다. 선생님도 모를 것 같기에.


사람은 유한하기에 신의 영역인 무한이라는 개념을 이해 못 한다고 한다. 지금도 나는 무한이라는 뜻은 알지만, 이해는 못하고 있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과 맞닿아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어릴 적, 길이 물리적 길이었다면, 커가면서의 길은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의 길이었다.

그 길을 도통 못 찾아 헤맨다. 찾은 듯한 길들도 어느새 미로처럼 뒤엉켜 버린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올바른 길일까. 내가 가지 않은 길이 내가 가야 했던 길은 아니었을까.

나는 나의 길을 걷는가, 남이 만들어준 길을 나의 길이라 믿으며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요일 오후, 길 위에 나는 멍하니 서 있다. 하늘색 하늘에 뜬 흰구름을 보며 온갖 상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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