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소녀와 사후피임약

약사가 엿본 모녀의 절박한 삶과 윤리적 딜레마

by 현주 약안먹는약사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가 처방전을 내밀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추었다. 아직은 앳된 아이를 살펴보았다. 처방전에 표기된 나이를 보니 중학교 1학년이었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덜 성숙해 보이는 듯한 깡마른 몸매에 다소 작은 키, 교복만 아니었다면 초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아이는 심부름을 온 것일까, 나는 잠깐 헷갈린다.


아이가 받아온 처방약은 사후피임약 ‘노레보’였다.

'노레보’는 무방비한 성교나 피임 실패가 발생했을 때 응급 피임을 위해 사용되는 약이다. 그야말로 응급약이다.

이 약은 성교 후 가능한 한 빨리, 늦어도 72시간 이내에 복용해야 한다.


아직은 어린아이인데, 무슨 일을 당한 걸까. 여러 생각에 걱정스러웠지만, 정식으로 처방된 약이기에 복약지도에 집중하며 약을 건네주었다.

아이돌처럼 엄청 예쁘게 생긴 아이가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약은 가능한 한 빨리 먹어야 한다면서요? 지금 먹을게요.” 아이는 망설임 없이 약을 먹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같은 처방전을 들고 몇 차례 다시 왔다. 아이에게 성교육이라도 해야 하나, 아님 도덕적인 훈계라도 해야 하나 잠깐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환자의 사생활이나 도덕적 가치관에 대해 함부로 개입하거나 훈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체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사후피임약의 잦은 복용은 호르몬 교란을 일으키고, 또한 피임 실패율도 높다는 점을 학생에게 강조하여 알려주었다.


어느 날 학생은 자신의 엄마와 같이 왔는데, 엄마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사후피임약을 먹었다.

엄마도 아이가 사후피임약을 먹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알면서도 딸을 방치한다는 것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민족의 낯선 억양을, 엄마는 쓰고 있었다.

강한 진통소염제 처방약을 받는 엄마의 손마디는 굵고도 거칠었다. 약이 제법 강하니, 꼭 식후에 복용하라고 하자, 일이 너무 힘들어서 진통제를 먹어가며 하루하루를 버틴다고 했다. 엄마는 온갖 험한 일을 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식당일부터 시작해 빌딩청소까지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조건 일한다고도 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의 엄마는 피곤에 찌들어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엄마가 아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나 의심해 보기도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엄마와 아이는 사이도 좋아 보이고, 서로 애틋하게 아끼는 듯 보였다.


학생과 엄마를 앞에 두고 사후피임약의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사후피임약은 일반 경구피임약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고용량 호르몬을 한 번에 투여하여 체내 호르몬 농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기 때문에, 부작용이 더 강하게 난다는 것,

또한 자주 복용할 경우 월경 주기가 현저하게 불규칙해지거나, 난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자궁 난소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말해 주었다.

더불어 경구피임약이 저용량 호르몬이기에, 보다 안전한 피임법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엄마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눈치였다.


이후 중학생 아이는 사후피임약이 아니라 경구피임약을 사갔다. 물론 피임약을 안 사가는 게 최선이지만, 그나마 경구피임약으로 바꾸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분명한 것은 아이는 엄마와 둘이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과 이민족의 편견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두 모녀 사이에는 나름 절박하고도 복잡한 삶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모녀의 절박한 삶이 지금의 상황으로 몰았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모녀를 지금의 상황으로 내몰았을 수도 있다.

단순한 개인적 방치가 아닌, 사회·경제적 구조가 어린 소녀에게 응급 피임을 반복하게 만든 배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그 가족사에 끼어들어 도덕적 판단을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아직 어린 학생이기에 걱정되었다. 결국 그 아이의 몸이 더 나쁘게 망가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 약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약사 연수교육에서 말하는 의료현장의 윤리적 행동원칙이 있다.

첫째, 자율성 존중의 원칙이 있다. 환자의 감정을 제삼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지나친 감정 개입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 선행의 원칙이 있다. 약사는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라는 것이다.

결국 환자의 의지나 감정을 존중하면서 선을 넘지 말고, 약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라는 것이다.


사진작가 케빈 카터가 찍은 '독수리와 굶주린 아이'라는 사진이 떠올랐다.

1993년 내전과 기근으로 고통받던 수단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은 극심한 굶주림으로 인해 힘없이 쓰러져 웅크리고 있는 어린아이와, 그 아이의 뒤편에 앉아 아이를 응시하는 독수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독수리는 마치 아이가 죽기를 기다리는 포식자처럼 보인다.

이는 전쟁의 참혹함과 기아의 고통을 세계에 알리려는 보도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이듬해인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사진작가가 생명이 위급해 보이는 아이를 구조하거나 돕지 않고, '최고의 샷'을 얻기 위해 독수리가 날아들기를 20분 동안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다는 점이 비판되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지 불과 두 달 후 케빈 카터는 33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자살은 사진에 대한 세간의 비난이 주된 원인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이 사건은 언론인들이 기록자의 역할과 인간으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남겼다.


케빈 카터가 겪었던 직업적 의무와 인간적 의무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나의 경우에 대비시켜 본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내가 14세 소녀를 앞에 두고 느꼈던 혼란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소녀에게 도덕적 훈계를 해야 할 인간적 의무와, 환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며 최선의 약물 정보를 제공해야 할 약사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나는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나는 렌즈를 치우지 못했던 카터처럼, 거대한 사회적 딜레마 앞에서 그나마 안전한 경구피임약을 건네는 최소한의 선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에게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한 것은, 과연 나만의 딜레마일까?

아니면 이 사회 전체의 윤리적 부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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