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수절제술

나의 한 부분이었던 장기와의 이별

새벽의 통증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저녁, 과식한 것도 아닌데 체기가 돌았다.

아침을 굶고 점심, 저녁 죽을 먹었다. 아픈 게 일요일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새벽 2시 반, 갑자기 배꼽 우측 아래쪽 통증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맹장위치였다. 아픔보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우리가 흔히 맹장염이라고 부르는 충수염의 전형적인 증상을 나는 겪고 있었다. 하루는 체한 듯 배 전체가 아프다가, 하루가 지나면서 맹장위치가 집중적으로 아픈 증상.


충수염을 진단받다

아픔을 참고 일단은 출근했다. 출근 후 1시간 정도 일하다가 바로 옆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초음파를 해 보더니 맹장염인 것 같다고, 당장 수술해야 할 것 같다면서 외과를 추천해 주었다.

의뢰서를 내밀고 진료를 받은 후, 심란한 마음으로 혈액검사, 소변검사, 초음파검사, X Ray검사를 순차적으로 받았다.

결과를 보니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충수염이었다.

입원실을 배정받고 누워있자니 마음이 복잡했다. 오전에 도착했는데 수술일정이 오후 4시로 잡혀있다고 했다. 맹장이 터지면 복잡해지는데, 늦어지는 수술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전신마취 후 수술

결국 5시쯤에 수술실에 들어갔다. 어둑한 수술실에 젊은 남자의사가 '마취의'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호흡을 길게 두 번 쉬고 나면 자신을 볼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오른쪽 어깨에 이상한 충격을 느끼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했다. 오른쪽 어깨가 쩌릿하니 이상하다고 느끼는 찰나의 순간, 나의 의식은 잠재워졌다.


아무것도 기억에 없었지만 순간 이동한 듯, 나는 입원실에서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었다. 마취가 깨면서 너무 아파서 저절로 나오는 울부짖음이었다. 벨을 눌러 무통주사를 신청했다. 무통주사를 맞으면서 아픔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힘든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넘기고 있었다.


동병상련

수술 후 가스가 나와야 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니, 틈틈이 걷는 게 좋다고 간호사가 말한다.

복도를 걷다가 충수절제술 후 수술 부위의 고름이나 진물, 혈액 등을 몸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 달아 놓는 배액주머니를 차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 7살 정도의 아이는 엄마와 함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맹장수술 했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 게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도 열심히 걷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러웠다.


복도를 걷다 보니 입원실마다 달려있는 이름과 병명을 보게 되는데, 생각보다 Appendicitis (충수염/맹장염)인 약어 'Appe'가 많았다.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었다. 새삼 동병상련을 느꼈다.


질병 앞에서 인간은 초라하고 왜소하다

저녁 늦은 시간, 복도는 조용하다. 복도를 가운데에 두고 온갖 검사실들이 늘어서 있다.

어둑한, 기다란 복도에 홀로 서서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검사실을 드나들었으며, 드나들 것인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지만, 질병은 아무 예고 없이 불현듯 찾아온다. 질병 앞에서 인간은 초라하고 왜소해진다. 그리고 마냥 겸손해진다.

또한 질병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소수무책인가. 그것은 거대한 자연 앞의 초라한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생활습관을 다잡아도 질병은 다가온다. 그럼에도 인간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일 것이다. 질병은 과거를 돌아보며 살아온 날들을 스스로 문책하며 점검해보게 한다.


다행히 수술 후 만 하루 만에 가스가 나왔다.

수술 후 가스배출은 장운동이 정상화되었다는 신호 이므로 중요하다.

진료를 받으며 수술결과를 물으니 끝부분이 일부 천공되었지만 염증이 퍼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터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퇴원하는 날, 수액세트를 제거하고 며칠 만에 세수를 했다. 그런데 턱 부분이 부어있고 아프다. 전신마취하면서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이라고, 며칠 지나면 좋아진다고 하니 기다려봐야겠다.


맹장(정확하게는 충수돌기)

맹장은 오랫동안 인류 진화 과정에서 쓸모없어진 퇴화된 장기의 대명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의학계에서는 맹장이 단순히 쓸모없는 흔적이 아니라,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맹장은 면역 체계 형성에 기여하며, 장내 미생물 균형을 유지한다고 한다.


쓸모없는 장기는 없다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 쓸모없는 장기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몸을 구성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부분들도 나름의 쓸모가 다 있다. 그 하찮아 보이는 작은 부분이 이상이 생겼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돌아보게 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려왔던 부분이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나의 잘못된 관리로 인해 함께했던 소중한 한 부분을 잃었다는 자책감이 몰려온다.

몸의 일부였던 맹장이 없어져서인지 왠지 배가 헛헛하다.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병원에서 보내고, 새해에 퇴원하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여 방문을 여니 방안의 익숙한 풍경이 새삼스러웠다.

비로소 안도감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화두처럼 늘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나 건강이다. 건강이 있어야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무탈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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