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변적인 뇌구조를 이용하여 자신이 바라는 세상 설계하기
느려진 시계의 마법
약국 시계가 느려졌다.
배터리를 갈아도 다시 느려지곤 했다.
아무래도 시계를 다시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미루게 되었다. 사러 가기 귀찮은 것도 있었지만, 느려지는 시계가 은근 맘에 들었다.
퇴근 시간 20분 전, 시계를 보면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은데 벌써 퇴근시간이다. 찰나의 착각이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실제 시간의 양은 같을지라도. 잠깐이나마 자신의 뇌를 속이는 것이다.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한다
<마음의 기술>에서 보면 과거의 나쁜 기억을 없애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억을 왜곡하여 좋은 기억으로 바꾸는 도식치료가 있다.
도식(Schema)이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말한다.
특히 어린 시절에 정서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형성되는 부적응적인 도식을 치료하는 것을 도식치료라고 한다.
도식치료에서 핵심적으로 쓰이는 것이 감정다리기법이다.
과거의 성폭력, 폭력, 유기 등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그 기억들을 상상 속에서 긍정적인 기억으로 바꾸어 나가는 기법이다.
이는 감정의 뇌가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뇌에게는 상상 속의 재구성도 하나의 '현실'로 입력된다.
인간이 스스로 뇌를 조절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뇌의 기능과 구조까지 바꿀 수 있을까? 그렇다.
이를 신경가소성이라 부른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뉴런 사이의 길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뇌의 기능과 구조가 바뀐다. 또한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었을 때, 주변의 건강한 신경세포들이 그 기능을 대신하거나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어낸다.
뇌는 90세까지 새로운 뉴런을 생성할 수 있다고 하니, 고령화 시대에 보다 희망적이다.
물론 호흡이나 심박수 같은 생존 본능에 관여하는 뇌간까지 통제할 순 없지만, 전두엽은 이성의 영역이기에 우리가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명상은 스트레스 반응을 주도하는 편도체의 활성도를 낮추고,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을 강화한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에게 명상 열풍이 부는 이유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생각과 행동을 수정함으로써 뇌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독특한 존재다.
즉,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느냐’가 문자 그대로 우리의 뇌를 조절한다고 볼 수 있다.
실생활에서 어떻게 뇌를 조절할 것인가?
전두엽이 주도권을 잡게 한다.
우리 뇌의 전두엽은 이성적인 판단을, 변연계는 즉각적인 본능과 유혹을 담당한다.
뇌를 조절한다는 것은 전두엽이 주도권을 잡게 만드는 것이다.
법륜스님 유튜브를 보다 보니, 분노조절에 대해 나온다. 분노가 솟아오를 때 일단은 분노를 잠시 멈추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분노가 있구나를 알아차리라고 한다.
이러한 5초간의 잠시 멈춤이 감정적인 뇌에서 이성적인 뇌로 제어권이 넘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편도체의 흥분이 가라앉고 전두엽이 활성화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시로 분노에 노출된다. 활용해 볼 만하다.
도파민을 활용한다.
아침시간이 가장 집중이 잘되기에,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은 아침에 한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이는 아침시간에 도파민 수치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동기 부여와 목표 지향적 행동을 이끄는 신경전달물질로 의지의 원동력이 된다. 또한 도파민은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보상과 쾌락도 제공하기에 어려운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준다.
하기는 싫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을 아침시간에 해치우자.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다시금 편집한다면,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뇌의 특성을 이용하여 우리의 뇌를 대놓고 속여보는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드는 의문이 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진실은 저 멀리 있고, 우리의 생각 속에서만 사실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과거의 기억조차 그저 각자의 해석일지 모른다.
가변적이고 유연한 뇌의 구조를 알게 되니, 진실에 대한 의구심과 더불어, 자유로움도 느끼게 된다. 나만의 사유와 창조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유 말이다.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직접 설계하라’는 니체의 말처럼,
단순히 환경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뇌를 도구 삼아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설계해 본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