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밤, 가장 먼저 차오르는 빛

찐빵과 팥빙수로 보낸 2025년의 동지

by 현주 약안먹는약사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

유난히 어둠이 빨리 내려앉는 퇴근길이었다.

차 안을 채운 라디오 소리가 오늘이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임을 일깨워 주었다.

동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붉은 팥죽이다. 예부터 팥의 붉은색은 음귀(陰鬼)를 쫓고 액운을 막아준다 믿었기에, 우리 조상들은 동짓날 옹심이 든 팥죽 한 그릇을 나누며 새해의 안녕을 빌었다.


액운을 막아보자는 간절함

하지만 늦은 퇴근길에 팥죽 가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골똘히 생각하다 냉동실 구석에 쟁여둔 안흥찐빵이 떠올랐다. '찐빵 속에도 팥이 있으니, 이것으로라도 액운을 막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해서 살고 있는 딸에게 톡을 했다. 오늘이 동지니 팥이 들어간 호빵이라도 하나 사서 먹으라고 말해 주었다. 팥을 질색하는 딸이지만, 액운을 막는 풍습이니 잊지 말라고 재차 당부했다.


뛰는 엄마 위에 나는 딸

잠자리에 들려는데 딸에게서 톡이 왔다. 자신은 팥빵 대신 팥빙수를 먹었다며 사진까지 보내왔다.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신박한 아이디어라고 칭찬받았단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MZ세대의 발랄함이 느껴졌다.

뛰는 엄마 위에 나는 딸이 있었다.


동지 종류에 따른 음식

동지는 우리 조상들에게는 작은설이라 불릴 만큼 큰 의미가 있는 24 절기 중 22번째 절기이다.

보통 동지는 양력 12월 21일이나 22일이다. 동지는 음력 날짜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올해(2025년)는 애동지에 해당한다.

동지 종류에 따라 액운을 막아주는 팥을 먹되 먹는 음식의 종류가 달라진다.

음력 11월 초순인 애동지에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팥죽 대신 팥시루떡을 해 먹였다고 한다.

중순인 중동지에는 팥죽이나 팥떡을, 하순인 노동지에는 팥죽을 먹으며 시기에 맞게 예례를 갖췄다.


주역(周易)의 관점에서 보면 동지는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64괘 중 24번째 괘인 지뢰복(地雷復, ䷗)이 바로 동지를 상징한다.

괘를 들여다보면 다섯 개의 음이 가득한 가운데 맨 아래쪽의 초효에서 양하나가 생겨나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陰) 속에서 빛(陽)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래서 동지는 '태양의 부활'을 상징하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희망적인 기점이기도 하다.


"동짓날에는 관문을 닫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제 막 태어난 여린 양기를 보호하기 위해 밖으로 돌지 말고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라는 지혜다.

밤이 가장 길어 음귀의 위험이 도사리는 날, 일찌감치 귀가하여

가족들과 모여 앉아 서로의 안녕을 살피라는 따뜻한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액운을 쫓아내다

애동지밤, 우리 가족은 팥찐빵과 팥빙수를 먹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액운을 쫓아낸 것이다.

전통의 형식이 시대에 따라 변할지라도, 소중한 사람의 무사안녕을 바라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동지가 지나면서 길었던 어둠이 걷히고 이제 빛이 길어질 일만 남았다. 우리의 내일도 점차 더 밝아지고 활기차지기를 바라본다.

제미나이가 칭찬한 딸의 팥빙수 사진을 보니, 모든 액운은 정말 다 달아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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