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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보기를 돌같이.

우리 애 보기를 옆집애 같이.

by 한혜령

살전 2: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서 유순한 사람들이 돼 유모가 자기 아이들을 돌보는 것같이 했습니다


딸 윤이가 막 걷기 시작할 무렵 아침 먹고 놀이터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동네 놀이터에 가면 그 동네 그맘때의 아이들이 놀이터에 모였다. 한국은 애기 때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눕혀놓을 수 있지만 미국은 그런 시스템이 없는 터라 5살 미만 아이들은 베이비시터가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놀이터 한편에 앉아 있으면 누군가 물어본다. "아 유 허 베이비시터?" 아니 나 엄만데.

벌써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당신 얘 유모니?"라는 질문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딸은 멋을 부리기 시작했고 세상을 알아가며 엄마와는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사춘기가 시작된 느낌이다. 나는 그 놀이터에 있던 그 시절에 있어서 이것도 챙겨주고 싶고 저것도 챙겨주고 싶지만.. 나와는 다르게 커버린 딸에게는 잔소리로 들린다는 것을 안다. 이제 나는 잔소리하고 가끔은 뱃속에서부터 끌어올려지는 포효를 해대는 엄마의 자리대신 유순한 유모의 자리로 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권위로서가 아닌 유순한 유모의 입장으로 돌보았다. 유순한 유모의 입장. 내 뜻대로 내 것처럼 내 성도처럼 대하게 되면 자칫 권위적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내가 축복해야 하고 내가 사랑해야 하고 내가 수고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축복의 통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그거면 나의 역할은 끝이다. 오늘, 난 유모로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받은 사랑을 그대로 전해주는 통로. 하나님을 잔소리하시는 분으로 오해하게 만들지 않기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이미 살피셔서 다 아시는 분이시니까. 이웃에게 그 사랑을 온전히 잘 전달하는 오늘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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