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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Aug 17. 2015

글로브극장의 무료 공연, 햄릿을 만나다

무료냐, 무료가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연히 보게 된 기사, 영국 글로브극장의 햄릿을 무료로 대학로에서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얼른 홈페이지에 접속, 무료 예매를 하려고 보니... 2015 SPAF 시리즈 중 하나를 유료로 예매해야만 무료 예매가 가능했다.

아니 이게 무슨 끼워팔기인가 싶었지만, 질소를 사니 과자를 덤으로 준다는 것처럼 얼른 피핑 톰의 '아 루에'를 예매하고 햄릿을 예매했다.

무료인데 무료가 아니네요...

야외무대에서 공연한다는 게 매우 걱정이 되고, 습기와 열기를 어떻게 견딜까 싶었지만 글로브극장 배우가 하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꼭 보고 싶었기에 예매를 마쳤다.


7:30 공연인데 6시부터 입장권을 나눠준다기에 넉넉히 5:45쯤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했는데, 이미 길게 늘어선 줄.

게다가 현장대기줄도 있어서, 예매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표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좀 뒤쪽 좌석이긴 했지만.

사전 예매자들 줄도 길었는데, 언제나 이런 행사장에 늘 그렇듯 자봉은 많고, 제대로 일할 줄 아는 사람은 적고. 예약자 이름대로 ㄱ~ㅅ과 ㅇ~ㅎ을 나눠놨는데 그렇게 줄을 세우지도 않고 무조건 일렬로 서 있는 상황.


결국 나중에 줄이 지나치게 길어져 행인들을 방해하자, 스텝이 자봉을 시켜서 줄 선 사람들 한명 한명에게 성함대로 나눠 서라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혼란스런 와중에 새치기하는 사람도 보이고.


이렇게까지 줄을 선다면 사전 예매의 의미가 뭐지 싶었다. 역시나 입장권 팔찌를 나눠줄 때 보니 빨간색, 파란색 팔찌를 주는데 이미 사전 예약자 이름으로 색이 정해져 있었다. 줄을 설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행사 진행의 미숙함은 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걸까.


팔찌를 받고 나니 6:30.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입장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지정좌석제가 아니라서 빨강, 노랑, 파랑 띠로 둘러진 구역 안에 자유롭게 앉는 것이라 미리 줄을 선 듯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대기줄에 합류. 입장 시간인 7:15까지 기다렸다.


바닥에 빨강, 노랑, 파랑 테이프로 구역을 구분 지어놨는데, 입장이 시작되고 나서 마음대로 앉는 사람들을 자봉들이 제지했다. 그것도 한계가 있어서 결국 내 옆에는 파란 팔찌를 한 사람이 당당하게 앉고, 나중에 현장대기로 들어온 노란 팔찌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아무데나 앉아서 통제불가능인 상태가 되었지만, 공연 시작 시간이 되니 그냥 바로 공연 시작.



영국 글로브극장의 '글로브 투 글로브 햄릿' 투어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기념일인 2014년 4월 23일에 시작돼, 2016년까지 2년간 진행한다고 한다.


12명의 남녀배우가 야외극으로 햄릿을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며 벌써 16개월간 약 180회의 공연을 해왔다. 

계속 전 세계 곳곳을 돌며 공연하기 때문에 무대 장치는 역시 단촐하다. 소품을 담았을 것 같은 케이스들이 무대 장치로 쓰인다. 소박한 커튼과 나무 판자가 다양한 무대 장치가 된다. 

배우들 역시 거창한 시대 의상을 입기 보다, 일상복을 입고 약간의 소품을 더할 뿐이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이런 복장은 가혹하죠

덥고 시끄러웠지만, 공연은 좋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본 건 여러 번이지만, 영어로 원문을 말하는 햄릿은 처음이었다. 어려운 고어와 비유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와닿는 대사들. 그리고 배우들의 엄청난 에너지와 연기.

더운 서울의 날씨에 땀을 눈물처럼 흘려가면서도, 땀을 훔치는 것조차 연기로 포함시키는 그들.

아름다웠다.

1막 90분, 쉬는 시간 20분, 2막 60분. 세 시간 동안 연극을 집중해서 보고 나니 지쳤다.

배우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집에 돌아와서 씻고 정리하니 생일이 지나가 있었다.

대학 교양 영어 시간에 외웠던 햄릿의 대사들을 가만히 입에 곱씹으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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