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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Aug 02. 2019

뮤지컬 해밀턴 – 마법천자문처럼 어느새 기억되는!

In New York, you can be a new man!

뮤지컬 해밀턴은 알렉산더 해밀턴에 대한 소개로 바로 시작된다. 랩이라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훌륭한 발성과 발음의 배우들이 해밀턴의 어린 시절을 빠르게 요약해 전달한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만큼 많은 배역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들이 해밀턴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도 관객이 빠르게 파악할 필요가 있는데 이 또한 매우 리드미컬하고 직설적이다. 애런 버가 “나? 그에게 총을 쏜 멍청이지”라고 바로 밝히는 식이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결말까지 밝히고 나서 시작하는 오프닝은 해밀턴에 대한 매력을 더 극대화한다.


힙합을 선택했던 이유는 해밀턴이 뉴욕 포스트를 창간하고, 수많은 논쟁을 글로 이어갔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극작가이자 초대 해밀턴 역을 맡은 린-마누엘 미란다가 밝힌 바 있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을 도모하던 시기에 기존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 전복의 정신을 담고, 후에 정부의 역할에 대한 대립되는 입장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논리를 펼치기에는 힙합만큼 적합한 장르가 없을 것이다. 혁명에 대한 필요성을 친구들에게 설복하는 My shot과 즉석 랩 배틀 형식을 빌린 Cabinet Battle은 통쾌한 감각 그 자체를 선사한다.


모든 등장인물에게 빛나는 순간을 주는 뮤지컬이 있다. 훌륭한 뮤지컬이라면 주역 아닌 다른 배우들에게도 그 캐릭터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관객이 그 인물의 맥락 안으로 한번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곡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해밀턴에서는 애런 버, 안젤리카, 일라이자 등 주요 배역 외에도 조지 왕까지 시선을 사로잡는 멋진 곡들을 마련해 두었다. 해밀턴을 힙합 뮤지컬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곡들 때문인데, 미국을 떠나간 애인에 빗댄 조지 왕의 밝은 러브송이라든가, 해밀턴의 편지를 태우면서 부르는 일라이자의 가슴절절한 슬픔이 담긴 곡 등 다양한 템포가 존재하며 해밀턴을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 빛나는 순간은 안젤리카의 ‘Satisfied’와 해밀턴과 버의 결투 장면에서의 회상씬이다. 안젤리카가 해밀턴과 일라이자의 결혼식에서 사실은 자신이 해밀턴에 먼저 반했지만 가문의 첫째로서 가난한 그와 결혼할 수 없었던 선택을 가슴 아파하며 부르는 노래 동안 모든 배역은 시간과 공간을 되감아 안젤리카가 해밀턴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다시 보여준다. 이전 장면에서 그 모든 연기를 봤던 관객들은 안젤리카가 과거를 회상하는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다시 결혼식 현재로 돌아와 신부와 신랑에게 축배를 드는 안젤리카의 노래 처음 부분이 다시 반복되면, 행복한 축사 뒤에 숨겨진 후회와 슬픔으로 노래가 새롭게 해석되게 된다. 해밀턴과 버의 결투 장면에서도 극의 모든 것을 다시 되새김할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이전 장면들이 관객을 그 회상에 효과적으로 동참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되감기 효과를 내는 회상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은 앙상블들의 동작이다. 해밀턴은 무대 장치를 화려하게 여러 번 바꾸기보다는 앙상블들의 동작과 춤으로 총알과 포격이 난무하는 전쟁터와 기습 장면을 표현한다. 코르셋을 차용한 베이지색 탑과 타이즈를 입은 남녀 무용수의 몸은 노래에 집중하는 주요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군더더기 없이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동작 자체가 되감기는 회상 장면부터 총알이 느리게 날아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까지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것은 앙상블 덕분이다.



해밀턴은 밀도 높은 근대 역사와 건국 선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수많은 등장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역사적 사건과 건국 초창기의 논쟁까지 압축적이고 즐겁게 담아냈다. 역사가 극을 압도하거나, 역사에 극이 끌려다니지 않았다. 연신 이어지는 신나고 파워풀한 곡들을 그냥 즐기다 보면 마법천자문처럼 머리 속에 알렉산더 해밀턴이 남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 그야말로 영리한 뮤지컬이다.



뉴욕 여행을 결정하고 나서 첫 번째로 예매한 뮤지컬이 해밀턴이다.

초절정 인기 뮤지컬답게 500$가 넘는 금액을 주고 좋은 자리에서 봤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텍스트의 밀도도 높고, 가사의 맛이 중요한 극이어서 OST도 계속 듣고 스크립트도 보고 갔는데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멋지게 번역해놓은 분이 이미 계셨다. 

해밀턴 보실 분들은 가사 번역 한번씩 보고 가시면 크게 도움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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