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자라는 마음
상담자로서 나는 여러 질문을 껴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일은 때로는 답이 없어도 끝까지 함께 머무는 일이기도 하니까.
어느 학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그 어머니의 자녀는 어린 시절 괴로운 가정환경을 꿋꿋이 버텨낸 학생이었다.
하지만 청소년기가 되자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가지 않았고, 부모님에게 죽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처럼, 자해를 하기도 했다.
분노의 화살은 처음엔 자기 자신을 향하다가, 점차 부모님을 향해갔다.
학교와 가정이 긴밀하게 협력하며 학생을 돕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지친 목소리로 내게 조용히 털어놓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받아줘야 하나요...”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나는 선뜻 답을 드릴 수 없었다.
그 아이가 감당해 온 괴로움의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릴 때까지는 가정에서 버텨주는 수밖에 없었다.
문득 떠오르는, 마음 아픈 아이들이 있다.
신문 기사에서나 접할 법한 극단적 사례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아이들.
병리적인 문제를 겪거나, 상상도 하기도 힘든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복합적인 어려움에 놓인 아이들.
나는 상담자로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지만, 가끔 벽에 부딪힌다.
아무리 안타까운 마음이 넘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자리를 지키는 일뿐인 경우가 많다.
섭식의 어려움을 겪던 한 아이가 있었다. 반복된 폭식과 구토로 마음속 분노를 토해내던 아이였다.
그것이 자신을 벌하고 가족에게 복수하는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35kg이 되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30kg까지는 빼야 해요. 라며 나지막이 웃던 아이였다.
이미 섭식장애의 거의 모든 치료법이 시도된 뒤, 나는 그 아이와 만나게 되었다.
섭식장애 전문서적을 찾아 읽으며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오래 병든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가 한 번도 늦은 적 없이 매주 상담실로 와주었기에, 나도 늘 상담실의 문을 열고 아이를 기다렸다. 내가 던지는 유머에 살며시 지어주는 미소를 보며, 더 좋은 상담자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그 시절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너만을 위한 이 시간에 네 이야기를 듣고, 함께 있는 것.” 이것뿐이었다.
전문서적을 독파할 만큼 진심이었지만, 너무 진지하거나 심각해지지 않게 학생을 대했다.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면서도 내 상담을 빠지지 않고 와준 건, 나와의 시간이 그 아이에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라 믿었고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학생을 기다렸다.
상담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실 우리 삶의 축소판이다.
누군가는 섭식으로, 누군가는 분노로, 또 누군가는 침묵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학교 안의 학생, 가정 속의 부모, 직장 속의 동료들까지.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디며’ 살아간다.
상담자는 그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뿐, 결국 우리 모두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변화는 그렇게 천천히, 거의 보이지 않는 속도로 일어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우리는 변화의 길 위에 서 있다.
‘된다’를 기준으로 보기에,
먼저 ‘안 되는 것’이 더 눈에 들어올 뿐이다.
우리의 삶은 회복과 성장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일은 오래 걸릴 수 있고, 생각보다 결과가 미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변화에는 긴 기다림과 노력이 필요하다.
삶은 단번에 완성되는 무엇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쌓여가는 과정이다.
멈추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면서 결국 우리는 어딘가로 나아간다.
변화를 향한 기다림을 견디기 위해선 결국 스스로를 지탱할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밖이 아니라, 결국 그 사람 안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