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트라우마의 방식
"선생님, 우리 애가 친구 관계로 상처받을까 봐 너무 걱정돼요."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고민 중 하나다.
물론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의 관계를 걱정한다. 하지만 그중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를 자녀에게 투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창 시절 따돌림을 겪었던 기억이 선명하면, 아이가 친구와 사소한 오해만 있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때로는 극단적인 반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친구 없어도 돼요. 어차피 크면 다 소용없어요." 관계를 맺는 일이 고통이었던 부모에게는 차라리 기대하지 않는 편이 더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면 어릴 적 친구들과 자연스레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 역시 그런 방어의 논리를 강화한다.
하지만 그렇게 피한다고 해서 인간관계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좌절과 시행착오 없이 관계의 기술을 익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친구의 관심사에 맞장구치는 법, 적당히 거리를 조절하는 법, 분위기를 읽는 법 — 이런 모든 것은 또래 집단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아이의 서툰 태도나 눈치 없는 말실수를 이해해 줄 수 있지만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또래 집단에서의 시행착오는 결국 어른이 되어 조별 과제, 직장 회의, 협업까지 다양한 장면에서 반복된다.
그렇기에 자녀의 친구 관계를 부모의 과거 트라우마로 재단하는 일은, 아이에게 주어져야 할 성장의 기회를 빼앗는 셈이 될 수도 있다.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학창 시절, 세상 누구보다 내 마음을 깊이 알아주는 친구가 있었다. 사소한 표정이나 작은 한숨만으로도 속내를 읽어주는 아이였기에, 나는 그 친구와 많은 것을 나누었고 자연스레 마음이 통한다고 믿었다.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여겼고 그 관계가 오래도록 변치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친구들 모임에서 여행 계획을 세우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그는 마치 그 아이의 대변인처럼 나에게 화를 냈다. 직접 말하지 않고 다른 친구와 내 이야기를 나눈 뒤, 그 감정을 대신 전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나에게는 여행 일정보다 관계의 균열이 훨씬 큰 문제였다.
그 일 이후 나는 한동안 방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흔히 있을 법한 갈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가족 안에서 경험했던 ‘믿었던 사람에게서의 상처’가 겹쳐진 듯 느껴졌고, 마음이 깊이 가라앉았다. 감정의 바닥이라는 것이 또다시 나를 끌어내리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도 믿음은 몇 번이고 금이 갔다. 시간이 지나 무뎌진 조각도 있지만, 그때 남은 감정의 잔향은 성인이 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고, 내 행동과 판단을 조용히 조정하곤 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녀의 친구 관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마음이 낯설지 않다. 다만 그 예민함이 지나쳐 아이가 겪어도 되는 작은 시행착오까지 막아버릴 때, 트라우마는 보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이의 기회를 가로막는 벽이 된다.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경고음을 울린다. 일정한 경계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경고가 지나쳐 새로운 인연과 관계까지 차단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그래서 ‘내가 어떤 기억에 아파했는지’, ‘그 기억이 지금의 행동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판단을 대신하지 못하고, 나의 시선이 왜곡되지 않는다. 그 시선은 결국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에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 아픔을 이해하되,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보려는 것.
우리가 앞으로의 관계를 선택할 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넓은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