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아기를 위하여 한의원을 열기로 한 건데
정작 아기 돌보는 것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아기를 돌보기와 개원준비 모두 동시에 다 잘할 수 있다고 다짐했는데
이게 정말 아기를 위하는 것이 맞나?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1) 먼지구덩이 한의원을 뒹구는 아기
지금 다다다
쿵쿵쿵
뛰어다니는 22개월 아기를 보면
이 아기를 옆에 두고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개원준비시기에는 아직 제대로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아기를 모유수유한다는 명목으로
한의원에 매일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내가 컴퓨터로 일처리 하는 동안
아기는 그냥 바닥에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며칠이나 아기를 바닥에 풀어놓았는데
어느 날
그제야
보였다.
먼지구덩이가.
한창 구강기인 아기는 호기심 가득 주변 물건을 열심히 빨았는데 그 주변물건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청소는 당연히 하나도 안되어 있었고
나는 지금 이 아기를 먼지구덩이에 두고 뭐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위해 한의원을 열겠다고 해놓고서는
더러운 곳에서 뒹굴어도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너무 미안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기한테 좀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 식당 아기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기
아기한테 좀 더 잘하기로 해놓고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의원 개원이 얼마 남지 않아
그날도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고
물품을 구매하고
청소를 하고
이것저것 서류를 만들어놓고
남편과 나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식당 아기의자에 아기를 앉히고
밥을 먹으려 하는데
뭔가 조용하다.
어라?
아기랑 식당에서 밥 먹는 게
이렇게 조용하진 않았는데?
고기를 들어 아기를 보니
아기가 식당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아기가 언제 낮잠을 잤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니, 요새 아기가 낮잠을 언제 자는지 기억이 안 난다.
문득
아기가 너무 짠했다.
너도 엄마아빠 따라다니느라 피곤했구나.
얼마나 피곤하면
아기의자에서 졸다니.
한편으로는
개원준비 전에는
먹놀잠이라며
아기 스케줄을 열심히 기록하고
낮잠 재우려고 아기띠도 하고 유모차도 태우고
몹시도 노력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낮잠 재우는 게 쉬운 거였다니!
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지쳐서 잠든거겠지. 미안해 아가.)
아무튼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더욱
한의원을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짠한 아기의 모습을
생각하며
엄마가
더
힘낼게.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드디어
한의원 개원의
최종관문인
보건소 점검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