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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Sora Aug 02. 2022

엄마가 코로나에 걸려 한약을 드려보았다

요즘 코로나가 재유행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봄의 이야기다.



어느 일요일

병원에서 당직 서고 있는데 엄마가 가족 단체 카톡방에 코로나 자가 키트 양성 사진을 올렸다.


처음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이었을까.

엄마가 며칠 전부터 춥고 머리 아프다고 했는데 음성이 나오다가 오늘 다시 하니까 양성이 나왔다고 했다.


월요일

엄마가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아빠랑 동생이랑 나는 한 목소리로 일단 보건소 가서 확진 판정을 받으라고 했다.

엄마는 너무 아파서 나갈 힘도 없다고 집에 있겠다고 했다.

타지에 사는 나와 동생이 당장 집으로 갈 수도 없고 답답했다.


화요일

엄마가 그나마 두통이 좀 덜해져서 동네 의원에 가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일단 아빠가 약을 사다 줬다.


교수님한테도, 다른 동기들한테도 조언을 구하고,

인터넷으로 논문도 찾아보았다.

우리나라 한의계에서는 주로 마행감석탕, 소청룡탕, 은교산, 갈근탕 등을 위주로 처방하고 있었고,

일본은 갈근탕, 소시호탕가 길경 석고, 중국은 청폐배독탕, 연화청온교낭 등을 주로 처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고민하다가 중국에서 그나마 연구 결과가 많은 연화청온교낭을 바탕으로 엄마의 증상에 맞게 한약재를 몇 개 빼고, 더해서 드리기로 했다.


연화청온교낭은 연교, 금은화, 석고, 판람근, 어성초, 박하, 마황, 행인, 곽향, 대황, 관중, 감초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엄마가 마황은 잘 맞지 않을 것 같아서 빼고, 관중도 평소에 잘 안 써본 약재여서 빼고, 엄마가 땀을 많이 흘리고 갈증이 없고 기운이 없다고 해서 두시, 노근, 황기를 더하고 소화력을 보강하기 위해서 창출을 더했다.


금은화와 연교는 코로나를 치료하는데 핵심적인 약재다. 항바이러스 효과가 입증되어 코로나 시대에 약재 값도 덩달아 올랐다. 몸값이 비싸졌다는 뜻이다.


게다가 한동안 약국에서는 은교산(금은화와 연교가 들어간 처방)을 구할 수가 없어 마스크 대란처럼 은교산 대란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곤 했다.


엄마에게 처방한 한약 구성. 개인마다 증상별로 다를 수 있으니 무작정 따라 해서는 안되고 가까운 한의원을 방문하셔야 합니다


수요일

엄마가 밤새도록 토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타이레놀 등을 먹고 소화불량이 발생한 것 같다)

나는 걱정이 되어서 보건소에 전화를 해봤다.

물론 보건소로 전화하면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항상 통화 중일 테니까

나름 병원에서 근무한 나의 비법으로 여기서도 내선번호를 이용하면 더 빠르게 전화 연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홈페이지에서 열심히 내선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역지사지로 생각을 해보며, 보건소 직원분도 매일 많은 양의 전화통화에 시달리고 계실 테니 최대한 간결하고 짧게 물어보았다.

"엄마가 코로나 확진이시고, 60세 이상인데 밤새 구토를 해서 수액 처치 등을 받기 위해서 입원이 가능할까요?"


친절하신 직원분은 엄마 인적사항을 물어보더니,

"역학조사를 안 하셨네요. 링크 제출을 하셔야지 전화가 갈 거예요."

나는 충격을 받고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다시 엄마한테 전화하니


"역학조사가 뭐야. 그런 거 안 했는데.. 할 힘이 없어."

나는 여기서 한 번 더 화가 났지만(아마도 엄마가 적절한 치료를 받으려면 엄마도 역학조사에 협조를 하고 당연한 절차를 진행해야지 엄마가 더 아프지 않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화가 났나 보다) 화를 꾹 참고 엄마한테 "문자 복사해서 나한테 보내. 내가 할게."라고 말했다.

그래도 엄마가 링크는 보낼 힘이 있으셔서 내가 입력을 하였다.


역학조사. 필요한 일이다. 사실 코로나가 많이 퍼져서 말이 역학조사이지 이제는 거의 이름, 핸드폰 번호 등 신상 확인에 가깝다. 환자 관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정말 아픈 와중에 이런 거 할 힘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격리되어 계신 어르신들이라면 다들 어떻게 하신 걸까.


그러는 와중에 한약이 오후에 도착했다.


엄마가 "한약 먹으니까 살겠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안도가 되면서도, 뿌듯했다.


목요일

엄마의 구토가 그치고 목소리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래도 구토를 했으니까 전해질을 좀 보충하자는 의미에서 엄마한테 이온음료를 마시라고 했다.

엄마가 집에 이온음료가 없다고 해서 B마트로 배달시켜줬다.


너무나 편리한 세상이면서도 어르신한테는 여전히 편리하지 못한 세상이다.


 

금요일

평소에 매일 전화하지 않는데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병원에서 환자들한테 "어제보다 좀 어떠세요"라는 말을 엄마한테도 하고 있으니 슬프기도 하고 엄마가 아픈데 정작 엄마는 돌봐드리지 못한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엄마는 그렇게 한약을 먹고 코로나를 잘 물리쳤다.


사실 한약을 먹고 나은 건지, 그냥 나을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인지는 이 례로는 모른다.


집에 체온계마저 없어서 엄마 열이 몇 도였는지도 모르고, 혈압계도 없어서 바이탈은 정확히 몰랐다.

그래도 기침, 기력 저하, 구토 등으로 고생했었는데 이렇게 나아서 정말 다행이다.


이후에 엄마가 후유증을 앓지 않도록 보약도 처방해드리고, 경옥고도 택배로 보내서 이번 달 한약에만 얼마를 썼는지 모른다.


가족이 아픈데 직접 갈 수가 없다는 것이 꽤 힘들었고, 또 21세기에 전염병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더더욱 한의학을 공부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이 한의사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그 누구도 겪지 못한 일이고,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병원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매주 시행하는 코로나 검사를 하며, 양성이 떠서 잠시 사라지는 분들을 보며 우리 가족에게도 차례가 곧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입원하려는 환자가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 뜨는 경우도 있었고 입원 중인 환자가 열이 나서 검사를 해봤더니 코로나인 경우도 있었다.

이미 주변 친구들도, 친척 중에도, 다른 동료들도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었고 우리 가족 중에서 걸린다면 누가 먼저 걸릴지 대비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가 엄마일 줄은 몰랐다.


나는 타지에 있어서 뵙지도 못하고 가족 대신 나의 환자를 돌볼 책임이 있기에 엄마는 괜찮아질 것이라고 속으로 다짐하며 내색 안 하고 내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

다행히 전화로도 엄마의 증상을 간략하게 알고 한약을 처방할 수 있었고(실제로는 맥도 짚으면 좋겠지만 격리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코로나를 무사히 이겨낸 것 같다.


환자가 들어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나는 최대한 환자의 입장에서 공감을 해보려고 한다.

회 먹고 속이 안 좋다고 하면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하고 속으로 생각해보고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하면 음 나도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 괴롭고 불안해했지 하고 속으로 생각해본다.

물론 환자를 치료할 때 공감의 여부보다는 그 환자의 증상을 토대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치료를 할 때 내가 공감하는 마음이 있어야 침을 놓을 때 더 집중해서 놓고, 약을 처방할 때 더 이 상황에서 최선의 약재가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처방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엄마에게 한약을 드린 경험은 그 뒤로 나에게 온 코로나 환자들을 이해하고 진료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비록 코로나가 아직 안 걸렸지만(혹은 걸렸는데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이 아주머니도 우리 엄마처럼 처음 진단키트 두 줄을 확인했을 때 당황하고 놀랐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환자들을 모두 내 가족이라고 여기고 정성을 다해서 진료하고자 노력하지만 가끔씩 이러한 다짐은 쌓여가는 피로에, 스트레스에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가 코로나를 잘 이겨내서 내가 한의학을 열심히 배운 것이 뿌듯하기도 하고(학교에서는 교육과정에 호흡기 전염병의 진단 및 한의학적 치료에 대한 과목이 있어서 이 과목을 필수로 1년 동안 배웠다) 이를 통해 환자들을 더 이해하는데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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