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론자가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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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론자 - 운명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학문은 너에게 강요할 수 있다. 그 후 이 믿음으로부터 너에게서 자라나는 것-비겁함, 체념 혹은 관대함과 자유로움-은 그 씨가 뿌려지는 땅에 의해 증명되겠지만 그 씨 자체를 증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씨에서는 모든 종류의 것은 다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미기 옮김,책세상,2019. p.201)
과학적 결정론이나 역사적 필연론과 같은 학문적 이론들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고, 모든 사건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이러한 학문적 주장은 인간에게 운명이 존재한다고 믿게 하며 , 이 믿음으로 삶에 대한 태도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니체는 숙명론이라는 씨앗 자체가 인간의 삶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숙명론을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비겁함이나 체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관대함이나 자유로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숙명론이라는 씨앗이 어떤 땅에 뿌려지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니체가 말하는 '땅'은 개인의 성향, 가치관, 경험, 그리고 그를 둘러싼 환경을 의미한다. 같은 씨앗이라도 비옥한 땅에 뿌려지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척박한 땅에 뿌려지면 빈약한 열매를 맺듯이, 숙명론이라는 씨앗도 개인의 내적 성향과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된다.
예를 들어, 숙명론을 믿는 사람이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사회적 불평등에 직면했을 때, 그는 체념하고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고, 오히려 운명에 맞서 싸우며 더욱 강인한 의지를 다질 수도 있다. 또한, 숙명론을 믿는 사람이 타인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목격했을 때, 그는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도 있고, 오히려 운명적인 연대감을 느끼며 도움을 베풀 수도 있다.
숙명론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강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숙명론은 인간을 체념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유롭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이 숙명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