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490. 이상주의자들의 망상 ㅡ 모든 이상주의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의 다른 어떤 일보다 본질적으로 더 좋은 것이라고 상상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일이 어떻게 해서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인간의 일에 필요한 매우 심한 냄새가 나는 거름이 필요함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2)
이상주의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의 다른 어떤 일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가장 고귀하고, 그 과정 또한 순수하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피와 땀, 그리고 때로는 절망과 고통이라는 '거름'이 필요하다. 위대한 과학적 발견 뒤에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때로는 윤리적 논란이라는 '거름'이 숨어 있다.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숭고한 이상을 내걸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 비난, 그리고 때로는 비열한 수단들이 '거름'이 될 수 있다. 이상주의자들은 이 '거름'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상이 너무나 순수하기 때문에, 그런 더러운 것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믿으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상을 훼손하고 싶지 않기에, 그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하고 추악한 면들을 애써 외면하거나 정당화하려 한다. '목표가 좋으니 수단은 중요하지 않아'라는 생각은 바로 이러한 망상에서 비롯될 수 있다. 하지만 거름 없이는 어떤 식물도 자랄 수 없듯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이상은 결국 현실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시들어버릴 것이다.
진정한 이상주의자는 자신의 이상이 얼마나 고귀한지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과정, 심지어 불편하고 추악한 면모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