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07. 적보다 훨씬 더 귀찮은 – 어떤 이유(예를 들어 감사해야 할 경우)에서든 우리 쪽에서는 무조건적인 공감을 정식으로 표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호감이 가는 태도를 확인할 수 없는 그러한 사람들이 적들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더 괴롭힌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7)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알 수 없는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다. 분명 나를 미워하거나 해치려는 '적'은 아닌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고 에너지가 소진되는 듯한 이들을 만났을 때가 그렇다. 그들은 직접적인 갈등을 일으키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가 나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니체가 말한 '무조건적인 공감을 정식으로 표시해야 하는 의무'는 우리 사회생활에서 흔히 마주하는 상황이다. 때로는 진심이 아니더라도 예의상, 혹은 관계 유지를 위해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도움을 받았을 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하고, 경조사에서는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 약속이자 기본적인 도리다. 문제는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서도 '호감이 가는 태도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 발생한다. 나의 긍정적인 표현에 대해 상대방이 무관심하거나, 냉담하거나, 심지어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일 때,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내 삶을 돌이켜보면 어떤 이는 내가 진심으로 칭찬을 건네도 그저 무표정하게 듣고만 있거나, 심지어는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또 어떤 이는 내가 도움을 주었을 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다음 요구를 이어갔다. 그들의 태도에서 나는 어떤 긍정적인 반응이나 호감도 느낄 수 없었다. 나의 노력이 허공에 흩어지는 듯한 기분, 나의 진심이 무시당하는 듯한 불쾌감이 밀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공감의 의무'를 다했지만,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호감의 태도'도 보여주지 않았다.
왜 이런 사람들이 '적들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더 괴롭히는' 걸까? 나는 그 이유가 '모호함'과 '해결되지 않는 긴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은 명확하다. 우리는 그들을 경계하고, 그들과 싸우거나 피하면 된다. 관계의 방향이 분명하기에 우리의 상상력은 그들을 '어떻게 물리칠까' 혹은 '어떻게 피할까'에 집중한다. 하지만 호감 없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적이 아니기에 대놓고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공감의 의무'가 나를 짓누른다.
나는 그들의 속마음을 끊임없이 상상하게 된다. '내가 뭘 잘못했나?', '원래 저런 사람인가?', '혹시 나를 싫어하는 건가?'와 같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나의 상상력을 불필요하게 소모시킨다. 그들의 무표정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들의 냉담함 뒤에 숨겨진 이유를 추측하려 한다. 이러한 상상은 결국 나를 지치게 하고, 해결되지 않는 긴장감 속에서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으려 애쓰지만, 사실은 출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지혜를 일깨워준다. 모든 관계가 따뜻하고 긍정적일 수는 없으며, 때로는 우리의 의무와는 상관없이 호감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호감 없는 태도에 나의 상상력을 낭비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대신, 그 관계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나를 괴롭히는 '코볼트' 같은 이들에게 나의 상상력을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태도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나의 감정을 보호하고 나의 에너지를 지키는 데 집중하려 한다. 모든 사람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보다,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