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주는 자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08. 넓은 자연 – 자연이 우리에 대하여 아무런 의견도 가지고 잇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즐겁게 자유로운 자연 속에 있게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6)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의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다. 우리는 가족, 친구, 사회가 던지는 기대와 평가의 그물망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말했다. 이 쇠사슬의 가장 강력한 형태 중 하나가 바로 타인의 ‘의견’이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에 기뻐하고 비난에 상처받으며, 끊임없이 ‘괜찮은 나’를 연기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살아간다. 나의 존재가 나의 것이기보다, 타인의 평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 속에 들어서는 순간, 이 모든 억압의 구조는 힘을 잃는다. 거대한 산과 드넓은 바다, 울창한 숲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견도, 기대도, 판단도 가지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지위를 가졌는지, 어떤 실패를 겪었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무관심하다. 그저 수억 년의 시간 동안 그래왔듯, 말없이 자신의 법칙에 따라 존재할 뿐이다. 바로 이 ‘의견 없음’, 즉 절대적 무관심이 우리에게 역설적인 해방감을 안겨준다.


자연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 던질 수 있다.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으며, 어떤 역할도 연기할 필요가 없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그곳에서, 우리는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이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고독이 아니라, 나 자신과 온전히 마주하는 순수한 상태로의 회복이다.


니체가 말한 ‘즐거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의견으로부터 벗어나, 누구의 판단도

받지 않는 존재로 서 있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자, 억압되었던 본연의 자아를 되찾는 기쁨이다. 자연의 위대함은 우리를 압도하는 풍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그 너그러운 침묵이야말로, 우리 영혼에 가장 깊은 위로와 자유를 선물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타인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 존재의 순수한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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