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17. 근본통찰 - 진리에 대한 요청과 인류의 복지 사이에는 미리 규정된 어떤 조화도 없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6)
나는 오랫동안 ‘진실을 아는 것’이 언제나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결국에는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니체는 이 안일한 믿음에 찬물을 끼얹는다. 진리를 향한 우리의 열망과 우리의 행복 사이에는 애초에 어떤 약속도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정기적으로 종합 건강검진을 받는다. 내 몸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알기 위함이다.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나는 ‘아무 이상 없음’이라는 소식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만약 의사가 내게 심각한 질병이 있다는 진실을 알려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 진실은 나의 평온한 일상과 행복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것이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진실을 아는 것(병의 발견)과 나의 복지(건강과 행복)는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비단 건강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때로 내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꿈이 사실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운 진실과 마주한다. 혹은,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소중한 관계가 실은 사소한 오해와 이기심으로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다는 진실을 깨닫기도 한다.
이런 진실들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던 환상을 가차 없이 깨뜨린다. ‘나는 건강하다’, ‘나의 꿈은 가치 있다’, ‘우리의 관계는 굳건하다’와 같은 믿음이 무너질 때,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진실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기는커녕, 더 깊은 불안과 절망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울 수 있는 진실을 계속해서 알고 싶어 할까? 그것은 어쩌면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 있다’는 통제감과 안정감을 원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니체는 그 안정감이 환상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진리와 행복은 미리 약속된 친구가 아니다. 때로는 진리가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고통스러운 진실과 안락한 거짓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 진실을 덮어두는 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일까? 이 껄끄러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