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16. 진리 – 지금은 그 누구도 극단적인 진리로 인해 죽지 않는다 : 너무 많은 해독제가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9)
과거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때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진리를 외친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에 서야 했고,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진리에 목숨을 바쳤다. 하나의 ‘극단적인 진리’가 한 사람의 세계를 파괴하고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던 시대가 있었다.
니체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진리는 치명적인 힘을 갖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일까?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해독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가 진리에 더 강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진리의 충격을 교묘하게 피하는 데 능숙해졌다는 뜻에 가깝다.
나는 잠들기 전 스마트폰으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영상과 과학자들의 암울한 경고는 ‘인류가 자초한 재앙’이라는 무서운 진실을 눈앞에 들이민다. 그 순간 나는 깊은 불안과 무력감에 휩싸인다. 이것은 분명 나의 안온한 일상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진리’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큐멘터리가 끝나자마자, 알고리즘은 나에게 재미있는 예능 클립과 친구들의 유쾌한 소셜 미디어 소식을 추천한다. 나는 몇 번의 스크롤만으로 금세 웃음을 터뜨리고, 방금 전의 심각한 진리는 수많은 정보의 파도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끝없는 볼거리와 소소한 자극들이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진실을 무력하게 만드는 ‘해독제’가 된 것이다. 나는 진리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밤잠을 설치는 대신, 해독제를 삼키고 편안하게 잠이 든다.
우리는 이제 진리 때문에 죽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 끝없는 오락거리, 자기 합리화의 기술 등 수많은 해독제가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해독제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가는가? 진실과 정면으로 부딪혔을 때 비로소 가능한 깊은 성찰과 근본적인 삶의 변화마저 막아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