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18. 인간의 운명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위하고 판단하더라도,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부당함을 알고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9)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고 판단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판단이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얼마 전, 나는 아주 가까운 친구와 크게 다툰 일이 있다. 나는 내 입장에서 서운했던 점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했고, 친구의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따졌다. 그 순간 나는 완벽하게 정당하다고 느꼈다. 내 판단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고,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친구에게 분노를 표현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감정이 가라앉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편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혹시 친구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너무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었다. 나는 친구의 전체 상황이나 속마음을 결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좁은 시야로 친구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단죄했다. 나의 판단이 ‘나에게는’ 정당했을지 몰라도, 그것이 결코 완전한 진실일 수는 없다는 것, 즉 ‘부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이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기에, 결코 공정한 재판관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나의 경험, 나의 감정, 나의 이익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우리를 더 겸손하고 신중하게 만든다. 내가 언제나 부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맹신하지 않는다. 타인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니체가 말하는 ‘인간의 운명’이란, 이처럼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동시에 그 판단의 한계를 아는 것, 나의 정당함 속에 숨겨진 부당함을 끊임없이 자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불편한 자각이야말로 우리가 독선과 오만에 빠지지 않고, 더 나은 이해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