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20. 우리 문화의 위험 - 우리는 문화가 문화의 수단으로 인해 몰락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0)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문화의 시대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클릭 한 번으로 인류의 모든 지식을 만날 수 있다.
나에게 음악 감상은 오랫동안 소중한 문화 활동이었다. 어릴 적 나는 좋아하는 가수 조용필의 앨범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용돈을 모아 레코드 가게로 달려갔다. 앨범을 사 온 날이면, 나는 방에 틀어박혀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가사집을 읽고, 앨범 재킷을 감상하며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려 애썼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문화 체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월정액 스트리밍 서비스 덕분에 나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문화를 즐기는 강력하고 편리한 ‘수단’이다. 하지만 이 수단은 역설적으로 나의 음악 감상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앨범 전체를 진득하게 듣지 않는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플레이리스트를 배경음악처럼 틀어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노래는 30초도 안 되어 다음 곡으로 넘겨버린다. 수백만 곡의 노래를 소유했지만, 단 한 곡도 제대로 소유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음악을 더 쉽게 즐기기 위한 수단이, 음악을 깊이 있게 사랑하는 나의 문화를 앗아간 것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하나의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 두꺼운 책을 몇 권씩 읽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 검색, 유튜브 요약 영상, AI가 정리해 주는 보고서 등 지식을 얻는 수단이 넘쳐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더 지혜로워졌을까?
우리는 깊이 사유하는 대신, 단편적인 정보를 소비하는 데 익숙해졌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저자의 생각과 씨름하는 고통스러운 과정 대신, 잘 요약된 결론만을 손쉽게 얻는다. 지식을 더 빠르게 얻기 위한 수단이, 지식을 통해 성장하는 사유의 문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의 수단이 주는 편리함과 효율성에 취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문화를 더 쉽게 즐기게 된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의 문화적 삶은 더 얕고 공허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