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을 만드는 사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21. 위대함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 어떤 강물도 자기 자신에 의해 크고 풍부해지지는 않는다 : 오히려 아주 많은 지류들을 받아들이며 계속 흘러가는 것. 그것이 강물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정신의 위대한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그 많은 지류들이 뒤따라가야 할 방향을 게시하는 일이다. 그가 처음부터 재능이 없는지 재능이 풍부한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0)


몇 년 전, 나는 작은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나는 책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능력도, 사람들을 휘어잡는 화려한 말솜씨도 없었다. 그저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한 달에 한 권, 함께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자’는 소박하고 분명한 방향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서너 명으로 시작한 작은 모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가 제시한 그 단순한 방향에 공감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회원은 책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 주었고, 디자인 감각이 있는 회원은 모임의 포스터를 만들어주었다. 누군가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토론의 깊이를 더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따뜻한 공감으로 모임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나는 그들을 이끌 만한 특별한 재능이 없었지만, 내가 처음 만든 ‘함께 읽고 나눈다’는 물길 속으로 각자의 재능과 개성이라는 지류들이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나의 작은 모임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풍부한 강이 되어갔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의 역할은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흘러갈 수 있는 첫 물길을 내는 것이었음을.

니체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얼마나 많은 재능을 가졌는지가 아니다.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다른 생각과 재능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더 큰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있다. 위대함은 홀로 빛나는 별이 아니라, 다른 별들을 이끌어 하나의 별자리를 만드는 힘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작은 물길을 낼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얼마나 많은 지류를 품을 수 있을지는 오롯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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