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과 사상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26. 체험을 잊어버리는 것 - 많이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게다가 사실에 입각해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체험은 쉽게 잊어 버리지만 그 체험에 의해 불러 일으켜진 사상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1)


우리는 중요한 경험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사건 자체의 구체적인 감각보다 그 경험이 우리에게 남긴 '사상', 즉 어떤 깨달음이나 교훈을 더 오래 간직한다. 체험의 생생한 감각과 디테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지만, 그로부터 얻은 생각의 뼈대는 우리 안에 단단히 남는다.

체험의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의 뇌는 모든 정보를 그대로 저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불필요한 정보는 걸러내고, 본질적인 의미만을 남기는 효율적인 방식으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니체가 '많이 생각하고 사실에 입각해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단서를 붙인 것은 체험을 단순히 감정적인 파편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본질과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하나의 사상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만약 어떤 실패를 겪었을 때, 그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만 남겨둔다면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실패는 배움의 과정이다'라는 교훈을 도출해낸다면, 그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아픔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된다.

경험의 구체적인 감각(체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나 교훈(사상)은 우리 안에 오래도록 남아 우리를 이끌어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반항과 추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