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28. 빛을 꺼리는 것 - 선한 행위도 악한 행위와 마찬가지로 빚을 꺼린다. 악한 행위는 알려짐으로써 고통(처벌로서)이 오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선한 행위는 알려짐으로써 쾌감(허영심의 만족이 다가오면 곧바로 중지해버리는,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순수한 쾌감)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2)
언제나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던 이면에 불을 비추는 니체다.
그는 선과 악이라는 극과 극의 행위가 모두 '빛'을 피하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그 이유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악한 행위가 처벌이라는 외부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반면, 선한 행위는 그 행위 자체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이 허영심이라는 불순물에 의해 사라질까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잘못된 행동을 하고 나면 그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한다. 예를 들어, 어릴 적 부모님 몰래 동생의 장난감을 망가뜨리고 숨겼던 일을 떠올려본다. 그 순간 느꼈던 것은 장난감을 망가뜨린 죄책감과 함께, 부모님께 혼날까 봐 두려워했던 마음이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나는 장난감을 옷장 속 깊숙한 곳에 숨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이처럼 악한 행위는 알려지는 순간 고통(처벌)을 초래하기에 필연적으로 빛을 피하려 한다.
선한 행위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순수한 쾌감'을 선물한다. 이는 보상이나 인정과는 무관한, 순수한 이타심에서 비롯된 만족감이다. 얼마 전, 횡단보도 앞에서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가 힘겨워하시는 것을 보고는, 내가 먼저 다가가 짐을 들어드리고 함께 길을 건너드린 적이 있다. 나는 그저 할머니가 안쓰러워 행동했을 뿐이고, 그 일을 누군가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 행위를 통해 나는 마음 한구석에 조용하고 따뜻한 기쁨을 느꼈다.
만약 그때 누군가 나를 보고 "정말 좋은 일을 하시네요"라고 칭찬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내가 SNS에 이 사진을 올리고 사람들의 '좋아요'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그 순간 허영심의 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니체의 말처럼 그 감정이 들어오는 순간,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었을 때의 그 깨끗한 기쁨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행위의 동기가 '다른 사람의 칭찬'으로 변질되어, 순수한 선의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선한 행위는 그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허영심이라는 불순물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스스로 빛을 꺼리는 것이다.
진정한 선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 자체로 기쁨을 주는 행위에 있다. 악한 행위가 처벌을 피해 그림자 속으로 숨는다면, 선한 행위는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용기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