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하루의 길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29. 하루의 길이 - 사람들이 집어넣을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하루는 백 개의 주머니도 가지고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2)


우리는 하루 24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에 갇혀 산다. "시간이 부족해", "할 일이 너무 많아"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면서도, 정작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니체는 이러한 '시간 부족'의 근본적인 원인이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을 채울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즉, 열정과 목표가 있다면 하루는 단순히 24시간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담는 백 개의 주머니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떠났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먹고, 느끼는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집어넣을 것'이 된다. 평소라면 멍하니 흘려보냈을 시간들이 여행지에서는 호기심과 설렘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래서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면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하고 아쉬워하면서도, 돌아보면 평소의 한 달보다 더 길고 풍부한 시간을 보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니체의 말처럼, 우리의 정신이 깨어 있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하루는 그 자체로 확장되는 것이다.


결국 니체는 우리에게 시간의 주인이 되는 법을 가르쳐준다. 하루의 길이는 시계의 초침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의미 없는 일들로 채워진 하루는 아무리 길어도 공허하게 느껴지지만, 열정과 목표로 가득 찬 하루는 아무리 짧아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우리가 진정으로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은, 우리를 설레게 하는 열정과 목표를 잃었을 때다. 하루를 백 개의 주머니로 만들고 싶다면, 우리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무엇'을 찾아 그 주머니들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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