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60. 많음 속에 있는 위험 – 사람들은 흔히 재능이 하나 부족할 때보다 재능이 하나 더 많을 때 훨씬 더 불안정하다 : 그것은 책상이 네 개의 다리로 더 잘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0)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멀티플레이어'가 되라고 속삭인다. 본업 외에 부업을 갖고, 여러 악기를 다루며,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다재다능한 인간상이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소셜 미디어 피드는 자신의 여러 재능을 과시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바심을 느낀다. 이처럼 '많음'과 '다양함'을 예찬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니체의 목소리는 차갑게 들려온다. 그는 "사람들은 흔히 재능이 하나 부족할 때보다 재능이 하나 더 많을 때 훨씬 더 불안정하다"고 말한다.
왜 재능이 많을수록 불안정해지는 걸까?
우리의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는 한정된 자원이다.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재능에 이 자원을 똑같이 나누어주려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얕아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여러 개의 얕은 구멍을 동시에 파는 것과 같다. 어느 하나도 시원한 지하수가 솟아나는 깊이에 도달하지 못한 채, 흙먼지만 날리다 지쳐 쓰러지기 십상이다. 깊이 없는 재능의 나열은 공허한 자기만족에 그칠 뿐, 진정한 성취로 이어지기 어렵다.
나는 한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을 믿으며, 여러 분야를 기웃거렸던 적이 있다. 그림도 배우고, 악기도 배우고, 외국어도 공부했다. 그 당시에는 나의 '다재다능함'에 뿌듯해했지만, 돌이켜보면 어느 것 하나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했다. 내가 가진 재능들은 서로를 방해하고 발목을 잡으며, 나의 삶 전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어설픈 다리들에 불과했다. 외부의 기대와 스스로의 욕심 사이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표류하는 불안정한 삶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니체는 이 불안정함을 세 개의 다리보다 네 개의 다리로 더 잘 서 있는 책상에 비유한다. 얼핏 들으면 재능이 많을수록 안정적이라는 통념을 지지하는 듯해 모순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나는 니체의 본뜻이 아마도 '조화'와 '통합'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 개의 다리가 완벽히 균형을 이룰 때 책상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다. 여러 재능이 하나의 뚜렷한 목표와 가치 아래 유기적으로 통합될 때 시너지를 내며 삶을 안정시킨다.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뻗어 나가는 재능들은 서로를 방해하고 발목을 잡으며, 삶 전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어설픈 다리들에 불과하다.
니체의 메시지는 재능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잡으라는 것이다. 여러 재능을 얕게 파기보다, 평생을 걸고 파고들 단 하나의 우물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핵심이 굳건히 서면, 다른 재능들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어떤 것은 그 기둥을 꾸미는 장식이 되고, 어떤 것은 버팀목이 되어 삶 전체를 더욱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재능의 홍수 속에서 표류하는 대신, 의식적인 선택과 집중으로 나만의 견고한 세계를 세우는 것. 이것이 니체가 불안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