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64. 위험할 때 – 막 차를 피했을 때 차에 치일 위험이 가장 크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1)
큰 위험에 맞서는 동안 우리의 모든 감각은 최고조로 날카워진다. 주변을 경계하고, 모든 가능성을 계산하며, 작은 실수 하나라도 피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렇게 에너지를 모두 쏟아낸 뒤 위기를 피하고 나면, 정신적·육체적으로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기 쉽다. 마치 힘겨운 전투를 마친 군인이 성벽 위 보초 세우는 것을 잊고 축배를 드는 것과 같다.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적의 습격에 가장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건강검진에서 좋지 않은 소견이 나와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결과를 기다리는 몇 주 동안, 나는 공포와 불안에 휩싸였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도, 잠을 편히 자지도 못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고, 나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큰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나는 내 건강을 잊고 살았다. 불규칙한 식사며 간식과 야식, 운동 부족이 이어졌다. 마치 큰 병을 피했으니 이제는 괜찮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몇 달 후, 나는 이전보다 나빠진 건강 상태로 다시 병원을 찾아야 했다. 첫 번째 ‘차’(암 의심)는 피했지만, 그 안도감에 취해 두 번째 ‘차’(생활 습관 병)에 제대로 치인 셈이었다.
사회 전체가 큰 재난이나 경제 위기를 극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위기 대응 시스템을 해체하거나 예방의 중요성을 잊어버린다.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큰 갈등을 겪고 극적으로 화해한 뒤, 서로의 관계가 더 단단해졌다고 믿으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하기 쉽다. ‘우리는 이 위기도 넘겼으니 괜찮아’라는 안도감이 관계를 갉아먹는 작은 문제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니체의 경고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공포 속에서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삶의 어떤 순간에도 ‘완전한 안전’이란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조언에 가깝다. 위기를 넘긴 자신을 칭찬하고 충분히 휴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안도감에 모든 경계를 풀어버려서는 안 된다. 진정한 강함은 폭풍우를 견뎌내는 능력뿐만 아니라, 폭풍우가 지나간 뒤 맑게 갠 하늘을 보면서도 묵묵히 다음을 준비하는 지혜에서 나온다. 막 피한 차에 안도하기보다, 길 건너편에서 다가올 또 다른 차가 있는지 한 번 더 둘러보는 것. 그 작은 차이가 우리의 삶을 더 안전하고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