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65. 목소리에 따른 역할 - 평상시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해야만 하는 사람은(예를 들어 귀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사람이나 많은 청중 앞에서)일반적으로 자기가 전달해야 할 사항들을 과장한다. -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속삭임에 가장 잘 맞는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반역자, 나쁜 험담을 하는 사람, 음모하는 사람이 된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1)
우리는 수많은 청중 앞이나 시끄러운 장소에서 말할 때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높인다. 이때 단지 물리적인 소리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메시지 자체도 더 단순하고, 단정적이며, 과장되게 변한다. 복잡한 뉘앙스나 섬세한 감정은 큰 소리 속에서 사라지고, 오직 선명하고 강렬한 주장만이 살아남는다. 대중 연설을 하는 정치인이나, 열정적인 강의를 하는 강사를 떠올려보면 쉽다. 그들은 청중을 사로잡기 위해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더 극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 역할이 그들에게 ‘과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대로 속삭임의 역할도 존재한다. 조용하고 은밀한 대화는 그 내용 역시 비밀스럽고 사적인 것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광장이 아니라,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골방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험담이나 비밀스러운 계획으로 흐르기 쉽다. 학창 시절, 몇몇 친구들끼리만 모여 소곤거릴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에 대한 뒷담화나 우리만의 비밀이 오갔던 경험이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속삭임’이라는 상황이 부여한 ‘음모가’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소리가 작았기 때문에 비밀을 공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비밀을 공유하는 상황이 우리의 목소리를 속삭임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통찰은 목소리를 넘어 우리 삶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자유의지로 역할을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주어진 무대와 소품에 맞춰 연기하는 배우에 가깝다. 가령, 딱딱하고 권위적인 조직에서는 나도 모르게 관료적인 말투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반면,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의 모임에서는 더 창의적이고 대담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이 된다. SNS라는 무대는 우리에게 ‘행복하고 멋진 삶’을 과시하는 역할을,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거침없이 비판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니체의 아포리즘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과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말과 행동은 정말 나의 진심인가, 아니면 단지 이 상황이 나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잠시 연기를 멈추고 무대 뒤의 진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주어진 역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어떤 목소리로,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지 자각할 수는 있다. 그 자각의 순간에 우리는 상황에 휘둘리는 배우가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때로는 거부할 줄 아는 주체적인 감독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