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에 눈이 머는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66. 사랑과 미움 - 사랑과 미움은 눈먼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지니고 있는 불길에 눈이 현혹된 것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2)


사랑의 불길은 강력한 스포트라이트와 같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 마음속의 불꽃은 상대방의 가장 빛나는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비춘다. 그 사람의 사소한 장점은 눈부신 광채로 과장되고, 결점들은 그 밝은 빛 뒤의 짙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상대가 완벽해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사랑이라는 불길이 그를 완벽한 존재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연애 초기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변 친구들이 아무리 그 사람의 단점을 이야기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내 눈은 사랑의 불꽃에 현혹되어, 오직 아름답게 타오르는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움의 불길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화염과 같다. 미움이라는 감정에 휩싸이면, 그 불길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나 좋은 점들을 남김없이 재로 만들어버린다. 과거에 아무리 좋은 관계였더라도, 미움의 불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상대의 모든 행동은 악의적으로 해석되고, 사소한 실수조차 용서할 수 없는 결점으로 낙인찍힌다. 한때는 가까웠던 친구와 사소한 오해로 멀어진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작은 서운함이었지만, 점차 미움이라는 불길이 거세지자 그 친구의 모든 말과 행동이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움의 불길이 나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오직 상대의 부정적인 모습만을 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니체의 통찰이 중요한 이유는, 사랑과 미움 속에서의 ‘눈먼 상태’가 우리 외부의 힘에 의한 수동적인 현상이 아님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타오르는 불길에 의한, 지극히 능동적인 ‘현혹’의 상태다. 이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과 통제력이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그저 불길에 휩싸여 모든 것을 태워버리거나, 그 불빛에 취해 환상을 좇을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의 존재를 자각하는 것이다. 사랑이나 미움의 감정이 극에 달할 때, 한 걸음 물러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모습이 저 사람의 전부일까, 아니면 내 안의 불꽃이 만들어낸 환상은 아닐까?’ 이 질문만으로도 우리는 잠시 불길의 현혹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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