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79. 당원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 -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당원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는 너무나 빨리 당파에 대해 샅샅이 숙고해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5)


우리는 어떤 집단에 소속될 때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낀다. 정치적 당파든, 열렬한 팬클럽이든, 혹은 강력한 신념을 공유하는 단체든, ‘우리’라는 울타리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명확한 정체성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니체의 말은, 집단이 요구하는 맹목성과 깊은 사유 사이의 근본적인 충돌을 지적한다. 대부분의 ‘당파’는 단순하고 선명한 구호, ‘우리’와 ‘적’을 나누는 명확한 흑백논리를 바탕으로 유지된다. 이러한 단순함은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이 단순함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우리의 주장은 정말 완벽한가?’, ‘우리가 적으로 규정한 저들에게도 배울 점은 있지 않을까?’, ‘이 신념의 이면에는 어떤 모순이 숨어 있는가?’

대학 시절,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던 한 사회 운동 동아리에 가입했던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순수한 목표와 동지들의 뜨거운 연대감에 깊이 매료되었다. 우리의 신념은 정의 그 자체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동아리 내에서 불편한 이방인이 되어갔다. 나는 우리가 비판하는 대상의 논리에도 일부 타당성이 있음을 발견했고, 우리의 운동 방식이 가진 폭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당파’의 경계를 넘어 그 너머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료들은 그런 나를 ‘순수하지 못하다’, ‘적을 이롭게 한다’며 비난했다. 결국 나는 그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질식할 것 같아 스스로 걸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무 빨리 그 당파의 안과 밖을 모두 사유해버린 부적격자였던 것이다.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당원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은 그가 이기적이거나 배신자여서가 아니다. 그의 충성의 대상이 ‘당파’가 아니라, 그보다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진실’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맹목적인 믿음의 안락함보다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고통을 택한다. 그는 ‘우리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옹호하지도, ‘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비난하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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