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이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81. 스스로 고통을 주는 것 – 사고에 배려가 없다는 것은 흔히 무감각해지기를 바라는 불만족스러운 내적 심정의 표시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5)


우리는 다른 사람의 배려 없는 말이나 생각 없는 행동에 상처받고 분노한다. ‘어떻게 저렇게 무책임할 수 있지?’ 혹은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라며 상대를 이기적이거나 어리석다고 비난한다.


이 아포리즘은 때때로 우리가 일으키는 문제들이 사실은 더 깊은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해적인 탈출구일 수 있다는 섬뜩한 진실을 드러낸다. 삶의 공허함, 해결되지 않는 불안, 깊은 무력감과 같은 만성적이고 형태 없는 고통은 우리를 서서히 갉아먹는다. 이 고통은 너무 막연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다. 바로 그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사고에 배려 없는’ 행동을 통해 선명하고 즉각적인 고통을 스스로에게 선물한다. 날카로운 외부의 고통으로 둔하고 지겨운 내부의 고통을 마비시키려는 것이다.


나의 상급자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능력 있었지만, 몇 년째 중요한 승진에서 누락되는 아픔을 겪었다.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는 깊은 무력감과 분노에 시달렸다. 그 무렵 그는 사무실에서 사소한 일에도 날카롭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후배의 작은 실수를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동료들의 의견에 습관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그의 공격적인 태도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는 험악해졌고,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고립되었다. 차 한잔 마시자고 찾는 직원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외부와 갈등을 일으키고 그 뒷수습에 에너지를 쏟는 동안, 그는 승진에서 탈락한 자신의 초라함과 무력감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의 ‘배려 없는 행동’은 사실, 실패했다는 더 깊은 내면의 고통을 잠시나마 마비시키기 위한 필사적인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기 파괴적인 마취 행위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감당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충동적으로 비싼 물건을 사서 재정적인 위기를 자초하는 사람, 뒷감당을 생각하지 않고 자극적인 험담을 늘어놓아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사람, 마감일 직전까지 모든 것을 미루다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사람. 이 모든 ‘배려 없는 사고’의 이면에는 지긋지긋한 내면의 고통을 잊게 해줄 더 크고 짜릿한 외부의 자극을 갈망하는 마음이 숨어있다. 막연한 불안보다는 차라리 명확한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더 견디기 쉽기 때문이다.


니체의 통찰은 우리 자신과 타인의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을 이해하는 새로운 창을 열어준다. 누군가 당신에게 생각 없이 상처를 주었을 때, 그를 비난하기 전에 잠시 생각해보자. 어쩌면 그는 당신을 공격하려던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아무나 붙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스스로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자책을 멈추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고통에서 도망치고 있는가?’ 치유는 외부의 소란으로 내면의 고통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의 근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불만족의 정체를 이해하려는 용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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