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의 고통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82. 순교자 – 순교자의 제자는 순교자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5)


‘순교자’라는 단어에는 숭고하고 장엄한 고통이 들어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사람. 그의 고통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위대하며, 그의 희생은 역사에 기록된다. 당연히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순교자 자신이라고, 나는 믿었다.


이 아포리즘은 고통의 본질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보게 만든다. 순교자의 고통은 아무리 극심하다 해도, 명확한 ‘끝’이 있다. 그의 죽음은 그의 고통을 완성시키고, 그의 삶을 하나의 완결된 신화로 만든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했고, 그 증명의 정점에서 사라졌다. 그의 고통은 불꽃처럼 타올라 한순간에 모든 것을 태우고 장엄하게 끝난다.


하지만 제자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그는 순교자가 남긴 그 완벽한 신화의 무게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순교자의 고통이 불꽃이라면, 제자의 고통은 꺼지지 않는 잿불과 같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내면을 끊임없이 태우며 천천히, 그리고 영원히 이어진다. 제자는 스승의 위대한 죽음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변질되지 않게 지켜내고, 자신의 불완전한 삶으로 그 숭고함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을 떠안는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순교자와 제자’의 관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님은 가족이라는 제단의 ‘순교자’다. 그분들은 “너만 잘되면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자신의 꿈과 청춘을 기꺼이 제물로 바쳤다. 그러면 그 희생을 온몸으로 받아낸 자식, 즉 ‘제자’의 삶은 어떨까? 그는 부모라는 순교자가 남긴 ‘희생’이라는 거대한 신화 속에서 살아간다. 그의 모든 성공은 부모의 희생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 되어야 하고, 그의 모든 실패는 부모의 숭고한 고통을 헛되게 만드는 배신처럼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삶을 마음껏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삶을 살게 된다. 순교자인 부모의 고통은 과거의 일이지만, 제자인 자식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의 부채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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