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83. 남아있는 허영심 - 허영을 부릴 필요가 없었던 많은 사람들의 허영심은, 그들이 자신을 믿을 권리를 아직 가지지 못했고 이 믿음을 겨우 다른 사람들에게 잔돈으로 구걸했던 시대에 남아 있다가 크게 자라난 습관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6)
성공해서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허영심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저 사람은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과시할까?’
이미 충분한 능력과 명예를 가졌음에도 사소한 칭찬에 집착하는 그들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스스로를 믿을 힘이 없던 시절, 우리는 타인의 인정이라는 ‘잔돈’을 구걸하며 하루하루의 자존감을 연명한다. 칭찬 한마디에 기뻐하고, 작은 관심에도 목말라하며,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행동은 생존 전략과도 같다. 이 절박한 구걸 행위가 오랜 시간 반복되면,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된 습관이 된다.
내가 아는 한 공무원은 처음 공직에 들어왔을때는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주무관에 불과했다. 동기들에 비해 학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그의 의견은 종종 묵살되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사소한 성과 하나하나를 상사에게 보고하고, 자신이 맡은 일의 중요성을 부풀려야만 했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라는 ‘잔돈’을 구걸하는 것이 그의 생존 방식이었다.
수십 년이 흘러 그는 높은 직급의 간부가 되었다. 이제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않으며, 그의 결정은 큰 무게를 가진다. 그는 자신을 믿을 충분한 ‘권리’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부하 직원의 작은 공까지 자신의 것으로 포장하려 하고, 회의에서 자신의 이름이 충분히 언급되지 않으면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의 허영심은 더는 필요가 없어졌음에도,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쳤던 과거의 절박함이 남긴 오래된 습관처럼 그의 곁에 남아 그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과시적인 행동 이면에는 어쩌면 칭찬이라는 잔돈을 구걸하며 버텨야 했던 외로운 과거가 숨어있을지 모른다. 그들의 허영심은 현재의 넘치는 자신감이 아니라, 과거의 텅 빈 주머니를 기억하는 오래된 슬픔의 표현일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들을 향한 비난은 연민으로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