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85. 불만의 생각 - 인간은 숲속에 있는 목탄가마와도 같다. 젊은 사람들은 완전히 연소되어 숯이 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유용해진다. 그들이 김을 내거나 연기를 내뿜고 있을 동안 그들은 아마 더 흥미로웠을 것이지만, 무익하고 귀찮기까지 할 경우가 너무 자주 있다. - 인류는 모든 개인을 가차없이 자신의 커다란 기계를 데우는 연료로 사용한다 : 그러나 만약 모든 개인(즉 인류)이 기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유용한 것이라면 기계는 무엇을 위하여 있는 것일까? 자기 자신이 목적인 기계들, 이것이 인간희극이라는 것일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6)
니체는 인간을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를 데우는 '연료'에, 특히 젊은이들을 쓸모 있는 '숯'이 되기 위해 타들어가야 하는 목탄에 비유했다.
이 냉소적이면서도 아픈 비유는 우리 존재의 근원적인 딜레마를 정면으로 꿰뚫는다.
우리는 누구나 '김을 내고 연기를 내뿜는' 시기를 거친다. 젊음은 뜨거운 열정과 서툰 반항, 그리고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자욱하다. 돈이 되지 않는 예술에 몰두하고, 세상의 당연한 진리들에 "왜?"라고 질문하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정의를 외친다. 세상의 정해진 틀에 맞춰지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빛과 색으로 타오르려는 이 몸부림. 하지만 사회는 이러한 모습을 종종 '흥미롭지만 무익하고 귀찮은 것'으로 치부한다. "그건 나중에 먹고 살만해지면 해라"는 충고와 함께 안정된 직장, 예측 가능한 미래, 사회적 성공이라는 규격화된 길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독특한 불꽃과 질문들은 점차 사그라들고, 우리는 서서히 연기 없는 존재가 되어간다.
사회라는 거대한 목탄가마 속에서 우리는 교육받고, 경쟁하며, 마침내 '유용한' 존재로 거듭난다. 기계의 효율적인 톱니바퀴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누구와도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되는 것이다. 이 변모의 과정에서 우리는 안정과 소속감을 얻는 대가로 무엇을 잃어버리는가? 한때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했던 비판적 시선, 비효율적이지만 나를 나답게 만들었던 고유한 열정의 연기는 모두 타서 사라진다.
우리는 균일한 모양과 온도를 가진 '숯'이 되어 기계를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연소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한 고유한 연소는 멈추게 되는 깊은 아이러니에 봉착한다. 더욱 희극적인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이 과정을 '성숙' 혹은 '철이 드는 것'이라 부르며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모두가 자신을 태워 기계를 데우는 데만 일생을 바친다면, 이 기계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끝없는 경제 성장,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구호 아래, 개인의 행복과 존엄이 연료처럼 소모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니체의 비유가 던지는 절망감 속에서도, 다른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기계의 연료가 되기를 완전히 거부하고 문명 밖으로 나갈 수는 없더라도, '어떻게' 타오를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저 정해진 온도에 맞춰 소모되는 숯이 아니라, 자신만의 불꽃과 연기를 조금이나마 간직한 채 타오르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일이 사회라는 기계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유용성'의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삶의 태도다. 이 무모해 보이는 저항이야말로, 부조리한 '인간 희극' 속에서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유일한 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