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86. 삶의 시계바늘에 대하여 - 삶은 최고의 의미를 가지는 드문 개별적인 순간들과 기껏해야 그러한 순간들의 그림자일 뿐인 우리의 주위에 부유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간격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 봄, 아름다운 모든 선율, 산맥, 달, 바다-모든 것은 마음에 단 한 번만 완전히 말할 뿐이다. : 어쨌든 완전히 말할 기회가 오게 된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순간을 전혀 가지지 못하고, 자신이 곧 현실적인 삶의 교향곡에서 간주곡이며 휴지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7)
니체는 삶을 한 편의 거대한 교향곡에 비유한다. 우리 인생은 심장을 울리는 강렬한 멜로디가 연주되는 ‘드문 개별적인 순간들’과, 그 나머지 대부분을 채우는 ‘간주곡과 휴지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벅찬 사랑의 고백, 숨 막히게 아름다운 자연 풍경, 영혼을 뒤흔드는 음악의 한 소절. 이처럼 삶의 정수가 된 순간들은 우리 마음에 단 한 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니체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결정적 순간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채, 자신의 삶을 그저 곡과 곡 사이의 쉼표나 의미 없는 간주곡으로 흘려보낸다고 통찰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간격’ 속에서 살아간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보내고, 예측 가능한 내일을 맞이하며, 의무와 습관으로 짜인 시간의 선로 위를 달린다. 이 평범하고 수많은 시간들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하지 않다. 삶의 기반을 다지고 우리를 지탱하는 중요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이 ‘간격’의 안락함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삶의 본질이 거기에 있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우리는 삶의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저 조용하고 안전한 휴지부에 안주하려 한다. 그러는 사이, 봄은 무심히 지나가고, 달빛은 창문을 비추다 사라지며, 우리를 위해 준비되었을지 모를 수많은 결정적 순간들은 미처 연주되지 못한 채 악보 위에서 잠들어 버린다.
니체가 말하는 ‘최고의 의미를 가지는 순간’은 거창하거나 특별한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가 세계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깊은 몰입과 깨어남의 순간이다. 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의 존재가 한없이 작고도 거대하게 느껴지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온 우주를 발견하는 순간, 한 편의 시에서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문장을 만나는 순간. 이러한 경험들은 삶이라는 교향곡에서 가장 빛나는 클라이맥스이며, 이 순간들을 경험했는가 여부가 우리 삶의 깊이와 색채를 결정한다.
매일의 일상을 무감각한 휴지부가 아닌, 곧 다가올 멜로디를 준비하는 진지한 서곡으로 여기는 것. 깨어있는 감각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노력하며, 언제든 내 삶의 클라이맥스가 시작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앞에 나타난 ‘단 한 번의 기회’를 알아보고, 온 마음으로 그 순간을 살아낼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단지 시간의 무의미한 나열이 아니라, 비록 드물지라도 눈부신 순간들을 품고 있는 장엄한 교향곡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