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88. 겸손 - 참된 겸손(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 위대한 정신에 적합한 것이리라. 왜나하면 바로 그 위대한 정신이 완전한 무책임(그가 창조해 내는 좋은 점에 대해서도 역시)에 대한 사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이 자신의 힘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마음대로 다루며 어디까지 그것을 견디는지 관찰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힘을 경험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의 불손함을 미워한다. 통상적으로 이것은 오히려 힘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를 증명하는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위대함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한 한 현명함의 관점에서 불 때 불손함은 아주 그만두도록 충고해야 할 일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8)
사람들은 보통 '겸손'이라고 하면,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철학자 니체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다. 니체에게 진짜 겸손은 약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한 사람이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최고의 경지이다. 니체는 "내가 이룬 대단한 일들도 사실은 나 혼자 힘으로 한 게 아니다"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강하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힘으로 누르면서 잘난 척하는 사람은 사실 속으로는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니체가 말하는 진짜 겸손의 핵심은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만든 존재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이 말은 우리의 재능이나 노력으로 얻은 성공이 사실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게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가진 재능은 부모님께 물려받았고, 생각이나 가치관은 자라온 환경과 교육의 영향을 받았다. 또 좋은 기회도 시대나 주변 사람들 덕분에 얻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수많은 조건들이 엮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위대한 사람은 바로 이런 사실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성공에 대해 '완전한 책임은 나에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성공은 다 내 덕분이야"라고 생각하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는, 솔직하고 자유로운 마음 상태를 말한다. 내 성공이 다른 사람들과 여러 조건들의 도움 덕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잘난 척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겸손이야말로 자신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의 결과이고, 그래서 니체는 위대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진짜 겸손과 정반대되는 것이 바로 '오만함'이다. 니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정말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힘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행동이다. 오만한 사람은 자기 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꾸만 다른 사람들을 통해 자기 힘을 확인하려고 한다. 그 방법으로 니체는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제멋대로 다루면서, 상대가 어디까지 참는지 지켜보는 것"을 예로 든다. 이것은 자신의 힘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느끼는 방법이지만, 가장 나쁜 방법이기도 하다. 마치 자기 목소리가 들리는지 불안해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사람처럼, 자기 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상처를 주면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고 한다. 이런 행동은 결국 자신의 불안감을 남에게 떠넘기는 폭력과 같다. 그래서 시끄럽게 힘을 자랑하는 것은 강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나는 자신감이 없어요"라고 스스로 폭로하는 꼴이 된다. 남을 괴롭혀야만 느낄 수 있는 힘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처럼 약하고 텅 비어있을 뿐이다.
진짜 힘은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거나 괴롭혀서 증명할 필요가 없다. 진짜 힘은 "나에게는 한계가 있고, 내 존재는 여러 우연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겸손함, 즉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 나오는 조용한 자신감이다. 반대로 오만함은 약한 사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은 가시 돋친 갑옷과 같다. 이 갑옷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까지 상처 입히는 어리석은 방법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남을 밟고 올라서며 불안해하는 삶이 아니라,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내면의 힘을 키워나가는 겸손하고 위대한 길이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현명한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