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00. 겉모습일 뿐이지만 붙잡을 수는 있는 - 심연의 옆을 지나가거나 깊은 냇물을 나무다리 위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난간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왜냐하면 난간이 곧 사람과 함께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안전하다는 생각을 얻기 위해서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젊었을 때 무의식중에 그 난간의 역할을 분명하게 해줄 인물들이 필요하다. 그 인물들은 우리가 실제로 큰 위험에 처해 그들에게 기대려 했을때, 사실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까이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예를 들어 세 경우. 아버지, 교사, 친구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3)
인생의 깊은 심연 옆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야 할 때는 난간이 필요하지만 그 난간에 기대어 체중을 싣기 위해 그것을 붙잡지는 않는다. 만약 정말 기댄다면, 낡은 난간은 나와 함께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난간의 진짜 기능은 기댈 수 있다는 물리적 안전함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얻게 되는 ‘시각적 안전함’, 즉 심리적 안정감이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전능한 난간처럼 보인다.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부모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은 두렵지 않다. 실제로 부모가 자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곁에 있다는 그 안정감이 젊은이로 하여금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만든다는 점이다.
학창 시절의 스승도 그렇다. 스승이 가르쳐준 지식이 인생의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되지는 못한다.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스승의 존재는 지식의 길이라는 다리 위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심리적 버팀목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기댈 곳이 있다’는 생각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용기를 준다.
우정 또한 마찬가지다. 힘든 시기를 함께 통과하며 나눈 우정은 삶의 든든한 난간이다. 사실 친구가 타인의 근본적인 고통을 대신 짊어주거나 해결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깊은 어둠 속을 혼자 걸어가고 있지 않다는 느낌,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누군가 함께 있다는 그 감각만으로도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힘을 얻는다.
우리는 이 ‘겉모습뿐인’ 난간 덕분에 인생이라는 위험한 다리를 건너는 법을 배운다. 처음에는 난간을 곁눈질하며 조심스럽게 걷지만, 점차 다리를 건너는 행위 자체에 익숙해지면서 난간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마침내 난간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굳건히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