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통증, 자만심의 나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99.자만심의 나이 -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26세와 30세 사이에 본래적인 자만심의 시기가 있다. 그것은 신맛이 강하게 남아 있는 최초의 성숙기이다. 그들은 자신 속에 느끼는 것을 근거로, 그것에 대하여 아무것도 또는 조금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겸손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우선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는 자만심에 찬 시선과 행동을 통하여 그리고 세련된 귀와 눈이라면 시, 철학 또는 그림, 음악 등 그 나이의 모든 작품을 재인식하게 될 그러한 목소리의 어구를 통하여 보복을 한다. 더 나이가 든 노련한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많은 것이, 그렇게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운명에 대해서 화를내는 이 아름다운 나이를 감동적으로 회상한다. 나중에 그들은 실제로 더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상실해버렸다 : 그들은 한평생 개선할 수 없는 허영에 찬 바보로 남을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3)


재능을 가진 젊은이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딜 때, 그의 내면은 뜨거운 용암처럼 끓어오른다.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과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세상은 좀처럼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 니체는 26세에서 30세 사이의 재능 있는 이들이 겪는 심리적 성장통을 ‘자만심의 나이’라고 명명하며 그 본질을 꿰뚫어 본다.

니체에 따르면 이 시기는 ‘신맛이 강하게 남아 있는 최초의 성숙기’이다. 가능성으로 충만한 내면과 아직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외부 세계 사이의 괴리가 이 시기의 젊은이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는 자신 안에서 느끼는 위대함을 근거로 세상에 존경과 인정을 요구하지만, 세상은 무심하기만 하다. 이 간극 속에서 그는 상처받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날카로운 자만심을 드러낸다. 퉁명스러운 말투, 오만한 시선, 자신만이 특별하다는 듯한 태도는 사실 “왜 나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가?”라는 내면의 절규인 셈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배운 지식과 열정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더디고 답답했으며, 나의 잠재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 당시의 나는 종종 선배들의 조언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나의 방식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날을 세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미숙함에서 비롯된 오만함이자, 인정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뒤틀려 표현된 것이었다.


니체는 이러한 젊은이의 자만심을 인생의 선배들은 따뜻한 미소로 바라본다고 말한다. 그들은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대신, 자신들도 거쳐왔던 그 ‘아름다운 나이’를 감동적으로 회상한다. 자신의 운명이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에 분노하며 들끓었던 청춘의 열병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다. 지금 저 젊은이가 뿜어내는 날카로운 자만심이, 언젠가 세상을 이롭게 할 단단한 자신감의 원석이라는 것을 말이다.

훗날 그 젊은이가 실제로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되더라도, 젊은 날 가졌던 ‘많은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은 오히려 희미해진다. 세상의 복잡성과 운명의 변수를 깨닫게 되면서, 젊은 날의 절대적인 자기 확신은 더 성숙하고 겸허한 지혜로 대체된다.

대부분의 재능 있는 이들에게 ‘자만심의 나이’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와 같다. 그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은 뜨거운 열망이 미숙하게 표현되는 과정이며, 가장 아프지만 가장 순수한 성장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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