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자의 심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98. 단념하는 사람의 비결 - 카톨릭 신부들의 방식에 따라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은 결혼을 그들의 가장 낮고 비천한 해석에 따라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시대인들 사이에서 명예를 거부하는 사람은, 명예의 개념을 낮게 해석할 것이다 : 그래서 그는 명예없이 사는 일과 명예에 대한 투쟁에서 홀가분해진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많은 것을 단념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는 쉽게 관대해진다. 동시대인들의 박수 갈채에 초연한 사람이, 그래도 작은 허영심의 만족은 단념하려 하지 않는 일도 가능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2)


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 그 대상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춰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 니체는 이러한 나의 자기방어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그는 무언가를 단념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해석함으로써, 포기라는 행위를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내가 손이 닿지 않는 포도를 보며 "저 포도는 분명 실 거야"라고 말하는 이솝 우화 속 여우처럼 말이다.


니체는 가톨릭 신부가 결혼을 반대하기 위해 결혼의 가장 비천하고 힘든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을 예로 든다. 결혼이나 명예 같은 '큰 것'을 포기한다고 해서 모든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사소한 것에 더 쉽게 관대해지거나, 혹은 더 집착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큰 욕망을 억누르고 포기하는 데 성공했을지라도, 그 욕구는 다른 작은 형태로 배출구를 찾는다. 거대한 명예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는 대신, SNS의 '좋아요' 수에 집착하거나 작은 모임 안에서 인정받으려는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큰 것을 단념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자부심이 되어, 사소한 허영심을 스스로에게 너그럽게 허락하는 심리적 보상이 되기도 한다.


니체는 무언가를 비판하고 거부할 때, 그것이 정말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방어 심리가 작동하는 것인지 들여다 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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