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의 뿌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608.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 - 우리는 무의식중에 우리들의 기질과 학설에 적합한 원칙과 학설들을 추구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마치 원칙과 학설들이 우리의 성격을 형성하고, 그 성격에 근거와 확신을 준 것처럼 보이게 된다 : 그런데 그것은 정반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의 사고와 판단들은 나중에 우리의 본질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이러저러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원인은 우리의 본질이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거의 무의식적인 희극을 하도록 규정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리고 태만과 안이함, 적지 않게는 본질과 사고에서 철저히 일관성 있는것으로 한결같아 보이려는 허영심의 바람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존경을 얻게 하며 신뢰와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4)


누구나 스스로를 이성적인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한다. 자신의 신념, 가치관, 철학은 수많은 고민과 학습 끝에 세워진 단단한 기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원칙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혹시 순서가 뒤바뀐 것은 아닐까?

이것은 마치 옷을 고르는 것과 같다. 가게에 들어가 수많은 옷들 중에서 자신의 체형과 스타일에 가장 잘 맞는 옷을 고른다. 그리고는 그 옷이 자신을 멋지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몸이 그 옷을 선택한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사상과 학설도 이와 같다. 본래 신중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질의 사람은 안정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가치관에 편안함을 느낀다. 반면, 도전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은 기존의 틀을 깨는 진보적인 사상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는 마치 그 사상이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처럼 이야기한다. "나는 안정의 가치를 믿기 때문에 신중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나는 신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안정의 가치를 선택했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신념은 본성의 원인이 아니라, 본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설명해주는 결과물일 수 있다.

자신의 본성을 일일이 탐구하고 그에 맞는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은 고되고 번거로운 일이다.

그보다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생각들 중에서 내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그것을 내 것인 양 따르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다. 또한, 일관성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허영심도 크게 작용한다.

"나는 이러이러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명확히 선언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얻는다. 예측 가능하고 강단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신념은 때로 진리 탐구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를 유리하게 만드는 자기 연출의 소품이 된다.


내가 굳게 믿고 있는 정치적 신념, 삶의 좌우명, 심지어 좋아하는 음악 장르까지, 과연 얼마나 순수한 사고의 결과물일까? 어쩌면 그 모든 것은 그저 나의 기질, 나의 성향, 나의 본성이 편안함을 느끼는 안전지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주장을 펼칠 때, 나는 정말로 그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을 믿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그 주장이 나의 성향과 잘 들어맞기 때문에 옹호하고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내가 왜 그것을 믿게 되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겸손한 태도일 것이다. 그 질문 속에서야 비로소 생각의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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