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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30. 2020

더 이상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다

1장  : 내 잘못이 아니다 _ 1화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는 날씨가 추워질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었고, 아버지의 성에서 살고 있던 나이 많은 공주님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는 채 거울의 방에 숨어있다가 끌려 나온다. 그녀는 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분노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건국이래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었다. 매일의 뉴스가 웬만한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었다. 세상이 뒤집히던 그때 나는 엄마의 병상 옆에 앉아 엄마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엄마! 엄마가 뽑은 대통령이 탄핵됐어”

엄마는 반쯤 감은 눈으로 무미건조하게 한마디를 한다.

“어휴, 걔는 그러게 왜 그랬다니….”

지금 이곳의 대통령이 가로 뛰든 세로 뛰든 엄마는 흥미도 관심도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엄마의 드라마가 곧 종영을 앞두고 있었으니. 이제 엄마는 다른 세상으로 떠날 것이다.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던지고 더 이상 삶에 대한 욕망도, 남겨질 자식들에 대한 걱정도 없다. 고단했던 삶은 내려지고 있었고, 빈손이 되어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고통만 없다면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였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했다. 입원을 유지하려면 어떠한 치료 든 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만 고통스러운 무의미한 치료는 오히려 남아있는 시간만 낭비하는 셈이라고 했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 편안히 해드리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고 했다. 우리는 누구도 엄마에게 함부로 그런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엄마는 지금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못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알아챈 것일까? 엄마의 기억에는 없는 1년여의 입원 기간.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결국 제주도로 돌아가자는 말은 어쩌면 엄마에게 최후통첩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시체 같은 이곳의 삶보다 내가 살던 곳, 반평생을 지내온 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며칠 후, 엄마는 제주도로 가고 싶다고 했다.

병원 측에서 헬기 이송을 제안했다. 응급 헬기가 아니면 엄마를 제주도로 모실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날씨가 문제였다. 헬기의 운행 여건은 여간 예민한 게 아니었다. 비가 와도 안되고, 바람이 불어도 안되고, 눈은 더더욱 안되며 안개가 끼어도 안되고, 바람이 불어도…. 안 되는 것이 너무 많다. 헬기 이송은 매일 아침 7시에 그 운항 여부가 결정 난다. 아침마다 ‘오늘이 그날인가?’싶어 병원으로 출근한다. 오늘은 안 뜬다는 말을 듣고 회사로 출근하고 다시 저녁이면 병원으로 돌아온다. 2주간의 기다림은 고된 기다림이다. 엄마는 제주도로 갈 날만 기다리며 마지막 성냥개비의 불씨를 피우고 있는 사람 같다.


날씨가 좋다. 드디어 헬기의 이륙 허가가 떨어졌다. 여러 번 준비를 했었기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우리는 엄마의 보호장구를 모두 채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람 한점 들어갈까 단단히 엄마를 여몄다. 헬기 전용 침상에 엄마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엄마의 겁먹은 눈은 안 그래도 퀭한 눈이 더 커다래졌다. 진통제를  달라고 한다. 잔뜩 긴장한 엄마의 입에 진통제를 털어 넣어주자, 모든 인원이 헬기장 승강기에 오른다. 나는 못 탄다. 언니가 보호자로 동승하기로 했으므로 승강기 앞까지가 내가 배웅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다. 승강기에 실리는 엄마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엄마! 무서워하지 마!”

“응”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을 나와 형부와 주차장으로 향한다. 12월의 청량한 하늘에 굉음을 내며 헬기가 이륙하는 모습이 보인다. 날씨가 좋아 다행이라 이야기하며 형부와 헤어졌다. 두어 시간 후,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널찍한 1인 병실에 온 가족이 모여 엄마의 귀환을 환영했으며, 엄마의 상태도 너룩 해져서 맛난 음식을 잔뜩 맛보고, 집에도 들러보고 싶다고 했다는 반가운 얘기를 들었다. 다행이다. 죽음이 엄마에게 시간을 더 주기로 했나 보다.  

 

 나는 일주일 후에 제주도로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계획은 틀어지게 마련이지. 예상보다 빨리 전화가 왔다. 엄마의 의식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니 빨리 제주도로 오라는 전화였다.

‘이게 뭐야! 고작 이것밖에 안주는 거야? 너무 야박하다. 죽음아!’


“여보! 이 보게! 눈 좀 떠봐! 효녀 딸 왔어! 수진이가 왔다고! 눈 좀 떠봐!”

아주 큰 목소리로….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부르듯이, 아빠가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침대 위에는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검게 수척해진 엄마가 힘 없이 누워있었다. 아빠의 목소리에 반응을 보인 엄마는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흐릿하고 초점 없는 눈동자. 잠깐 마주친 그 눈은 이내 감겨버렸다. 귀찮은 듯한 눈빛. 나의 죽음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떠나고 있었다.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엄마의 의식은 이제 아주 먼 곳에 있는 것 같다. 아직 생명이 남아있는 몸뚱이가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의식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이 긴 고통스러운 과정을 줄여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검붉게 변해가는 엄마의 얼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까?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은 십자가형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2016년 12월의 마지막 날. 엄마의 뜨거운 손을 붙잡고 둘이서만 새해를 맞이했다. 엄마는 그래도 한 살 더 먹고 가신다. 저 멀리 수평선 위에 걸려 있는 거대한 호화 여객선이 떠오르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찬란하게 빛난다. 빛을 받아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저 배는 마치 천국으로 가는 배인 듯하다.

“엄마!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가! 빛이 보이면 그 빛을 따라가! 절대 뒤돌아 보지 마!”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건넨 말이었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드디어 인정했다.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으나,

이만하면 최선을 다했다.


 2017년 1월 5일 오후 3시 40분. 드디어 엄마가 영면에 들었다. 3일 내내 겨울비가 왔다. 한림 천주교 묘지에 엄마를 모시는 날까지도. 그곳에 엄마 혼자 남겨두고 산 자들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요하게 뒤집힌 세상. 엄마가 없는 새해가 시작됐다.


커튼을 걷고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걸로 끝이다! 왜 이렇게 주저하고 망설이느냐? 그 안쪽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서? 다시 돌아올 수 없어서? 우리가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게 혼란이요. 어둠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게 우리 인간들의 본성이라네.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이제 이 세상은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떠난 것은 엄마지만, 남겨진 자들의 세상도 모든 것이 혼란 속에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모든 것들이 어둠으로 변해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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