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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30. 2020

남에게 이해를 바라지 마라

1장 : 내 잘못이 아니다 _ 3화

절실함이 있는 사람들은 직장에 대해 자연스레 갖게 되는 기본 소양이 있다. 회사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과 대표에 대한 경외심이 그것이다. 첫째, 그것이 어떠한 상황이든 싫은 내색을 보이면 안 된다.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지라도 ‘그래, 너의 말이 다 옳다!’는 표시를 해야 한다. 둘째, 잦은 밤샘과 야근에도 매일 아침 피곤한 내색 없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추가 노동에는 대가가 따로 없다. 그저 약간의 성취감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충성스러운 직원이 되어야만 안전지대로 발을 들일 수 있다. 그 외의 곳은 지뢰밭이다.

위 와는 다르지만 절실함은 나에게도 있었다.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 그 일을 할 때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여전히 나의 존재는 가치가 있다는 것…. 그 존재의 충만함은 절대적인 두려움과 불안을 막아주는 나의 유일한 성곽이었고, 공허한 삶을 ‘의미’로 채우기 위해서는 직장이라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는 엄마의 발병을 밝히지 않았다. 엄마는 반듯이 그 병을 이겨내고 나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3개월 시한부가 선고된 이후엔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회사 동료들과 대표에게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밝히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내가 처한 상황에 일시적으로나마 위안과 도움의 손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정확히 인식되지 못하는 나의 고통은 그들에겐 낯설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나 보다. 그렇게 그들의 인내심은 쉽게 바닥을 드러냈고, 의무 회피에 대한 비난을 받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급한 그들, 무한대인 척하던 너그러움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하루 종일 진통제에 취해 있는 엄마는 시간의 개념이 희미했다. 엄마의 식사를 제시간에 챙기려면 나의 점심시간을 2시간 써야 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줄겠지만, 나의 책임과 의무는 그들이 우려할 바 없이 완벽할 터이니, 나의 이런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L 국장과 K 대표에게 울먹이며 부탁했던 것이 불과 저번 달이었다. 한 달 후 어느 날, L 국장과 단 둘이 광고주 미팅 후 그의 차로 사무실로 복귀하던 길이었다.


L 국장 : 이 실장! 너 투잡(tow job) 뛰어? 대표님도 너 투잡 뛰냐는데? 회사에 너무 없다고…?

나 : 네? 국장님... (긴 한숨) 엄마 가요. 점심 식사를 혼자 못하세요. 그래서 점심 2시간 쓰게 해달라고 저번에 말씀드렸는데... 기억 안 나세요? 일만 문제없으면 알아서 하라고 하셨는데...

L 국장 :.... 아! 그랬지. 잊어버렸다! 정말 미안하다.


나의 그 울먹거리는 요청의 효과는 1달 짜리였구나. 매우 짧다. 투잡(tow job)이라니 잔인하다. 심지어는 그렇게 많이 자리를 비울 거면 1년 무급 휴직을 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말이 휴직이지 퇴사 권유와 다름없다. 이 잔인한 인간들은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 줄 모른다. 사냥이 끝나자 사냥개를 죽이는 꼴이다. 지난 3년간 그 긴박한 상황들을 선봉에서 끌고 오던 나였다.  이런 상황에 월급까지 없어지면 어쩌란 말인가? 제안을 거부한다. ‘어떻게든 버텨 내보자! 이보다 더 힘겨운 고비도 항상 넘어왔다.’ 지금 이곳을 떠나면 40대 초반의 싱글 여자 고액 연봉자가 다시 회사에 취직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가족들에게 회사를 관뒀다는 소리로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혼도 안 하고 그렇게 일 만하고 살 거냐! 너 때문에 걱정돼서 맘 편히 죽지도 못하겠다”가

엄마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그런 잔소리도 이제 더 못 듣는다. 엄마가 결국 죽었다. 

그 지독한 암세포는 엄마를 통째로 덮어 질식시켰다. 

2017년 1월 5일. 몹시 춥고 비 오던 그날에...


나는 엄마의 상을 치르고 1주일 후에 바로 회사로 복귀했다. 밀린 업무도 많았지만, 죽음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나에게 유일한 위로인 성곽으로 들어가기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극도의 예민해진 나의 가시와 죽음의 무게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버릴 줄은 몰랐다. 미친 듯 일에만 몰두하면 빨리 잊힐 것 같았지만 정반대였다. 알 수 없는 통증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아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자진해서 입원을 했지만 그 누구도 동정심을 보여주진 않는다. 한심하기까지 한 그들의 이해력은 고작 이런 소리나 한다.

L 국장 : 그러게 누가 그렇게 빨리 복귀하래? 1년 쉬라니까...


그랬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나는 쉬고 싶지 않았다더 바빠지기를 원했다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위로는 오해만 낳을 뿐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위로 따위는 바라지도 말자. 세상 어느 누구도 못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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