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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30. 2020

쓸모가 없다

1장 : 내 잘못이 아니다 _ 4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온 가족이 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말이 이사지 이민이나 다름없었다그때의 제주도는 해외와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가족 모두 삶의 터전이 바뀌는 중대한 결정이었으나사실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낯선 땅에서 다시 맨바닥에서부터의 고행이 시작된 것이다제주도에서의 시작은 녹록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리고 나의 부모님들은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이루어내었다마치 기적처럼….

 

엄마는 언제나 강했다. 4명의 자식을 키워내야 하는 타지에서의 삶이 자연스레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내가 고등학교에 입학 한지 얼마 안 되어 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그리 어리지 않은 나이에도 이상하게 그때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왼쪽 가슴에 멍울이 잡히고 유난히 아프다고 말하던 엄마는 그것이 암인 것으로 판명 나자마자 바로 수술을 받았다엄마의 왼쪽 유방 근육과 림프선을 모두 들어내는 큰 수술이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주말이면 내가 불침번을 서야 하는 날도 있었다엄마는 몸을 잘 움직이지 못했으므로엄마가 부르면 약과 물을 챙기는 병시중을 들어야 했다하지만 너무 졸려서 깨어 있을 수가 없었다난 잠만 잤다다음날 아침눈 비비며 일어나는 나에게 엄마가 한 소리 한다

너는 내가 몇 번을 불렀는데..., 듣지도 못하고 잠만 자더라너 불침번 서지 마쓸모가 없잖아잠만 잘 거면 집에 가서 자!” 

역시 엄마다그날부터 나는 불침번 명단에서 탈락했다엄마는 놀라운 회복력으로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유방이 없어진 자리에 생긴 커다란 흉터그것은 평생 콤플렉스로 남았다나이 들어 재건 수술을 권했지만엄마는 자신의 모습을 가족이 아닌 누구에게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목욕탕에 갈 때마다 몸을 움츠리고 딸들을 가림 막 삼아 목욕을 하던 모습그것이 내가 처음 본 엄마의 약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의 쓸모 있음을 증명한 적이 적어도 한 번은 있는 것 같다네 자매 중 유일하게 단번에 서울로 진학한 자랑스러운 딸이었느니 말이다그때부터 엄마와 통화할 때면 아이고우리 효녀 딸~ ”이라는 애칭이 생겼다내 나이가 30대 후반에 접어들자나의 미혼이 엄마의 최대 고민이 되었고왜 결혼을 안 하는가에 대한 대화의 접근방식은 늘 한결같이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

네가 어디가 모자라니얼굴이 못 생겼어학벌이 모자라코도 얼마나 예쁘게 잘 나아줬는데왜 남자를 못 만나는 거야성격 좀 죽이고 살아그래야 남자들이 좀 붙지!” 

모자란 거 없는 잘난 딸이 결혼을 안 해 또 쓸모가 없어질 처지에 놓인 것이 안타까워하는 말인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결혼을 해도 걱정안 해도 걱정인 엄마가 아닌가그리고 최고의 걱정거리들은 언제나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으니나의 미혼 문제는 곧 다음 걱정에 밀려 잊혀졌다.


엄마는 본인의 암이 딸들에게 대물려질 것이라는 예견으로 모든 딸들의 암 보험을 미리 가입해 놓았다이런 예상은 어찌나 잘 맞는지..., 큰 딸인 언니가 유방암에 걸렸다다행히 0기에 발견이라암 조직을 제거하고몇 년만 주의하면 재발할 위험은 없다고 했다일찌감치 결혼한 언니는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때였기 때문에언니의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맡고엄마가 언니의 병상을 지켰다엄마는 언니의 수술 날부터 3박 4일 동안 꼬박 언니 곁을 지켰다그 좁고 딱딱한 보호자 용 침상에서…. 퇴근하고 엄마와 불침번 교체를 위해 병원으로 갔다오늘은 언니의 머리를 감겨 줘야 한다그건 내 담당이었다며칠 사이 부쩍 수척해진 엄마가 힘들어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곳에 있는 게 왜 이렇게 힘들지너무 괴롭다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나도 암에 걸릴 거 같아정말 싫다 여기...” 

언니는 이제 괜찮으니까엄마는 걱정 말고 집에 내려가내가 자주 들여다볼게.”

엄마를 제주도 집으로 바로 보냈다엄마의 약해진 모습을 본 것이 그때가 두 번째였다. 

 

그 어두운 암시들을 빨리 눈치챘어야 했다누군가는 엄마에게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갱년기 증상이려니 생각하고 무심하게 놔둔 그 모든 순간들이 후회된다하지만 너무 늦었다엄마의 암은 난소에 자리를 잡은 지 이미 오래였던 것이다난소암 4기 판정이 내려졌다대 수술이 시작됐다. 5시간의 예상 소요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났다아빠와 언니와 서울에 계신 친척분들 몇 분이 대기실을 지켰다다들 멍하니 수술 중’ 표시에 등이 꺼지기만을 기다렸다수술 중간에 교수님이 잠시 나와서 현재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난소를 포함한 자궁은 이미 들어냈으나암세포가 이미 신경을 따라 퍼져 있는 상태라서 다른 팀에서 와서 제거해야 합니다작은 덩어리들까지 제거하려면 앞으로 몇 시간이 더 걸릴 것이고완벽히 제거하기는 힘드니..., 나머지는 나중에 항암치료로 없애야 할 것 같습니다” 

9시간이 지났다개복 상태로 최대치의 시간을 버틴 것이다가슴이 졸여진다드디어 수술실 불이 꺼지고엄마가 수술실 밖으로 실려 나온다온갖 장치들을 붙이고 퉁퉁 부어버린 엄마는 의식이 아직 명확히 돌아오지 않았다너무 긴 시간을 마취했기 때문에 제정신이 돌아오려면 지금부터 절대 재우면 안 된다고 했다계속 숨을 쉬게 해서 몸속의 가스를 배출시켜야 한다고 했다

엄마를 그날 밤에 100만 번은 족히 불렀을 것이다.

엄마눈떠숨 쉬어야 해들이마시고내쉬고..., 들이마시고내쉬고...” 

숨을 안 쉬면 엄마가 죽는다…. 엄마가 죽는다그 생각밖에 없었다.

 

다음날부터 엄마는 빠른 회복력을 보인다역시 강한 엄마다안 움직이면 장기들이 유착된다는 말에 엄마는 거침없이 움직인다엄마의 삶에 대한 집착은 세상 누구보다 강하다그러니 나는 안심해도 된다엄마는 이런 암 따위 곧 털어버리고 다시 건강해질 거라는 단단한 나의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예전의 엄마로 돌아가고 있었다

몇 주 후부터 엄마의 항암치료가 시작됐다완벽히 제거하지 못한 작은 암덩어리들의 완전 제거를 위해 항암치료는 필수였다엄마는 두세 달 간격으로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고온갖 부작용의 고통을 견디는 것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이제 엄마의 약한 모습은 거의 매일이었다.


2년 동안의 항암 치료가 무색하게 암세포는 대장과 척추로 퍼졌다대장의 일부를 제거하고 장 우회술을 받기로 했다이러다가 엄마의 몸속에 남아나는 장기가 없겠다또 대수술이 시작됐다또 밤을 지새우면서 엄마를 불러댔다.

엄마눈떠숨 쉬어야 해들이마시고내쉬고..., 들이마시고내쉬고...”

엄마의 복부는 처참히 난도질을 당했다가로로 또 세로로 찢기고꿰매이고이젠 구멍까지 생겨 버렸다엄마의 통증은 화를 내고소리를 지르고어린아이처럼 몸부림치면서 울게 만드는 거대한 고통이었다.


“저리 가! 나 만지지 마날 가만 놔두라고!” 

고통에 항복한 엄마의 절규는 차마 볼 수 없었다나는 눈을 피했다나는 엄마를 내버려 두었다그러한 고통에 위안 따위는 아무 소용없는 말일뿐이다. 나는 불안을 집어 삼켜 버렸다. 고통이 만들어낸 지옥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도망가는 것은 헛된 욕망일 뿐이라며풀어놓으면 달아나 버릴까 스스로 정신 줄을 단단히 매어 놓는다

껍데기만 남은 앙상한 엄마가 아프다고 울면 난 이젠 어쩔 방법이 없다간호사를 불러대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평생 나의 쓸모 있음을 증명하려 살아왔지만정작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무력한 겁쟁이 딸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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