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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30. 2020

이봐요!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봐요

1장 : 내 잘못이 아니다 _ 5화

여성 암 분야에 명의로 소문났던 엄마의 담당 교수님이 뉴스에 나온다. 엄마의 수술 경과를 보러 적어도 하루에 한차례는 방문하던 그분이 병실에 나타나지 않은지 며칠이 되었다이유를 묻는 우리에게 명의 대신에 웬 꼬맹이가 와서 일이 생긴 교수님을 대신해 당분간 엄마를 담당할 거라고 했다수술을 집도하던 당시그 명의는 병원의 리베이트 문제에 휩싸여 있었는데경찰 수사가 들어오자 도망을 간 것이었다엄마는 참 운도 없지의사가 그 모양이었으니수술실에서 제정신이었겠는가환자를 그렇게 버리고 도망가는 의사는 면허를 취소해야 당연하다.

 

의사와 병원에 대한 나의 불신은 그렇게 시작됐다. 엄마의 상태는 항암치료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이미 번질 대로 번진 산불처럼 엄마의 암세포는 몸 여기저기서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있었고좀처럼 잡히지 않는 그 불길은 몸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엄마를 담당하는 교수는 수차례 바뀌었고바뀐 교수에 따라 치료 방법도 여러 가지가 동원되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응급실 방문에 나도 달려 나갔다통증이 너무 심해서 제주도에서 올라온 엄마는 응급 입원을 하기 위해 응급실로 갔지만그것이 실수였다그날따라 응급실에 환자가 너무 많았다거기에다가 엄마는 검사를 바로 진행하기 위해 하루 종일 공복 상태로 병원에 온 것이다당뇨가 있는 엄마는 쇼크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한여름이었지만 엄마는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고응급실 의자에 빼곡하게 차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하지만 응급실에서는 계속 기다리라고만 한다엄마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진다당뇨 쇼크가 온 것이 분명하다나는 급한 맘에 응급실에서 큰 소리를 냈다

여기 혈당 쇼크 왔어요어떻게 계속 기다려요쓰러진다고요!” 

고래고래 큰 소리를 내자그제야 간호사 한 명이 달려오더니 엄마의 혈당을 재고 긴급조치를 한다혈당을 안정시키고 진통제를 맞았지만 오늘따라 환자가 너무 많아 당장 입원이 안된다는 거였다그럼 어찌해야 하나지금 수액을 뺄 수도 없고 시간에 맞춰 진통제가 들어가야 한다병원에서 급하게 하룻밤 지낼 수 있는 응급실이 운영되는 주변 병원을 추천해 준다내일이면 병동에 침상이 나오니 그곳에서 하룻밤만 보내고 내일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응급차 호송으로 00 병원으로 향한다모든 진료 차트를 같이 보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00 병원은 내가 예전에 발목을 접질렸을 때 갔던 병원이다생사가 걸린 환자가 전혀 없는 병원이란 소리다응급실로 엄마의 휠체어를 끌고 들어간다의사가 차트를 보더니 엄마의 피를 뽑자고 한다뭐라고엄마는 바늘을 또 찔러야 한다는 소리에 움찔하며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고개를 가로로 흔든다저 바늘은 막아야 한다그 생각으로 의사에게 항의를 표했다.

 

 : 이봐요선생님거기 차트에 다 있잖아요방금 전에 S병원 응급실에서 피 뽑아서

검사 다하고 온 거라고요그런데 피를 왜 또 뽑아요?”

응급실 멍청이 응급실에 오면 우선 피를 뽑고 검사를 해야 합니다. 절차가 그래요그래야 입원을 하지요.

나 아니 그건 아는데지금은 특수한 상황이잖아요. S 병원에서 침상이 안 나와서어쩔 수없이 여기로 추천받아 온 건데안 그래도 아픈 사람을 절차 때문에 또 괴롭힌단 말입니까?

응급실 멍청이 아니그냥 아무나 입원시키면… 여기가 무슨 여관입니까?

 

그냥 오늘만 여관’ 하라고 말하고 싶었다어차피 나이롱 병원이면서...이 멍청이가 자존심이 세다난 계속 안된다고 우겼다엄마의 손과 발은 이미 혈관들이 다 숨어 버려서한번 찌를 때마다 엄마는 너무 고통스러워했다. 그렇게 말씨름에 내가 이길 찰나, 엄마가 그냥 팔을 내민다그만하라고 괜찮다고…, 결국 뽑는 듯 마는 듯 피를 뽑아 내고야 만다피골이 상접한 엄마 손등에서는 피가 조금밖에 나오지 않아 아무런 검사도 할 수 없다애초에 검사도 안 할 것들이었다악마 같은 것들미친놈들…. 욕이 절로 나온다입원실에 바로 올라가 침상에 엄마를 눕혔다. 6인실 밖에 방이 없었다간호사가 필요한 처치들을 다 하고 사라졌다치킨을 사 들고 병문안 온 나이롱환자의 친구들은 처음엔 눈치를 보더니 이내 떠들기 시작한다그들을 내쫓았다오늘은 여기서 그러지 말라고오늘 여기 진짜 아픈 사람 있다고….

 

다음날 아침 엄마는 병원 부인과 암 병동에 입원을 했다그 입원이 엄마의 마지막 입원이었고다시는 퇴원할 수 없었다엄마의 상태는 시간이 지나도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엄마의 확고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의 몸속 큰 혈관 하나가 암덩어리에 눌려 터졌다자궁이 있던 자리다질에 한가득 지혈용 붕대를 넣어 틀어막고담당 의사는 출혈 위치를 찾아 일단 막겠지만만일 지혈이 안 될 경우엔 수혈에 한계가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마음의 준비라니….

난 급히 언니를 호출하고엄마의 CT 스캔을 지켰다엄마는 잔뜩 불안해한다촬영이 끝나고 암 병동 관찰실로 돌아왔다관찰실은 병동 안에서 위급한 환자들이 머무는 곳으로간호사들이 수시로 체크할 수 있도록 간호사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일종의 병동 안의 응급실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는데어째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마음의 준비를 하라니 어쩌니 해놓고어찌 이것들은 환자를 방치하는가? 분노가 치솟는다병원에선 화를 안 내는 게 좋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그래도 이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간호사실로 들어간다간호사실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말한다.

우리 엄마 촬영하고 왔는데왜 아무도 체크 안 해요수혈 팩도 다시 꽂고 바이탈도 달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왜 환자를 방치하는 거예요?” 

간호사들은 그제야 분주하게 움직인다다행히 출혈은 멈췄다의사가 천만다행이라며당분간 조심히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언니가 병원에 도착했다드디어 나는 마음은 안정을 찾는다

언니.. 아까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어마음의 준비를 어떻게 하란 말이야!” 

언니를 붙잡고 엄마에게 안 들리게 이야기했다

 

쟤는.. 막 뭐라고 한다의사든 간호사든…” 

엄마가 언니에게 슬쩍 말한다나는 엄마의 그 말에 살짝 으쓱하다그나마 항의라도 할 수 있는 딸이 옆에 있어 다행이라는 소리로 들렸다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런 거 고작 이런 것뿐이다. 미안해 엄마

그러니까 엄마도 좀 더 있어줘내가 막을 수 있는 건 다 막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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